한때 ‘1만 시간의 법칙’이란 용어가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말콤 글래드웰이라는 사람이 쓴 ‘아웃라이어’라는 책에 나오는 말로 어떤 분야에서 성공을 하려면 1만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 주 내용입니다. 말콤은 역사학자이자 경영사상가입니다. 그는 월스트리트저널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영사상가 10명 중 한 명이니 성공을 꿈꾸는 이라면 말콤의 주장을 터부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 들어 1만 시간의 법칙은 설득력을 잃고 있습니다. 오늘은 노력해서 성공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대학이나 회사에 들어가려면 출신배경이 좋아야 가능하다고 합니다. 금수저, 흙수저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이 그 풍토를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노력한다고 해서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시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한 분야에서 정통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3년이란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그 시간을 인내와 끈기를 갖고 밀고 나가야 숙련공이 되는 것이지요.
신앙인들에게도 인내와 끈기는 매우 중요한 덕목입니다. 오늘 본문도 결국은 끈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지요. 아무리 고약한 재판관이라 하더라도 본문에 나온 과부처럼 끈질기게 매달리면 판결을 해주는데 하나님이야 그리 하고도 남지 않겠느냐는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성경에는 이처럼 끈기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가 수없이 담겨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나라를 잃고 방황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언젠가는 고향으로 되돌아 갈 수 있다며 인내와 끈기를 잃지 말라고 당부하는 예언자들의 음성이 가득 담겨져 있습니다.
신약에서 예수님은 그 어떠한 존재도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를 끊어낼 수 없다는 진리를 죽음과 부활로서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도 이러한 믿음을 꺾지는 못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제자들 역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진리의 길 위에서 인내와 끈기로서 살아갔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5장 3∼4절에는 이와 관련해 아주 유명한 말씀이 기록돼 있습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세상은 더욱 악해지고 진리의 길은 모호해져 갑니다. 우리는 악을 따르라고 강요받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악의 길이 편해 보이기에 쉽게 타협하고 그 길을 택합니다. 저는 2014년 9월에 팽목항에서 광화문까지 걸으며 그 길 위에서 잊어서는 안 될 아픔의 역사를 보았습니다. 생각과 신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무참히 이웃의 생명을 빼앗았던 현장을 보며 오늘의 이 나라가 매우 악한 행위들 위에 세워진 나라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지금도 이러한 행위를 반복하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생각만 해도 무섭습니다. 우리 인간이 참으로 무서운 존재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진리의 길을 가는 것은 편을 나누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길을 감에 있어서 많은 손해를 감당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가야 합니다. 신앙의 여정은 마라톤에 비유되곤 합니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이를 악물고 호흡을 가다듬어야 합니다. 그리고 왜 내가 달리는지를 재확인합니다. 이것이 인내요, 끈기입니다. 하나님께 길을 가는 이유를 되묻다보면 진리의 여정에서 벗어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김현호 신부 (대한성공회 동두천나눔의교회)
◇약력=△연세대 신학과 졸업 △㈔평화를일구는사람들 디렉터 역임 △현 대한성공회 동두천나눔의집 원장
[오늘의 설교] 인내와 끈기
입력 2016-10-21 2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