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로 으르렁대던 중국과 필리핀이 경제협력이라는 이름으로 관계 개선의 물꼬를 텄다.
지난 18일부터 나흘간의 방중 일정에 나선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20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해외 일정은 아세안(ASEAN) 국가를 제외하면 중국이 처음이다.
인민대회당 앞 광장에서 환영 의식을 마친 양국 정상은 곧바로 회담에 들어갔다. 시 주석은 이번 회담에 대해 “중국과 필리핀 관계의 중요한 이정표”라며 “양국은 비바람을 겪었지만 우정과 협력을 원하는 근간은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남중국해 갈등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시 주석은 “중국과 필리핀 국민은 피를 나눈 친형제”라고도 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중국은 필리핀의 친구”라며 “뿌리가 깊어 쉽게 잘라낼 수 없다”고 화답했다. 이어 “겨울이 가까워질 때 베이징에 도착했지만 양국 관계는 봄날”이라고 강조했다. 양국 정상은 관광, 농업, 어업, 인프라 건설과 관련된 13개 협정 체결을 지켜봤다고 인민일보가 보도했다. 중국은 필리핀의 열대과일 수입 제한 조치를 해제하고 중국인 관광객의 필리핀 관광 자제령도 풀어 관광 분야 협력도 강화키로 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정부 수행원 30여명에 경제계 인사 400여명을 대동했다.
정상회담 의제에서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을 인정하지 않은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판결은 아예 제외됐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PCA 판결은) 그냥 종이쪽지에 불과하다”며 “지금은 논의할 때가 아니다”고 밝혔다. 류전민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양국은 남중국해 분쟁이 양국 관계의 전부가 아니라는 데 합의했다”면서 “대화와 협상을 통해 외교와 국방 문제를 풀어나가기로 했다”고 정상회담 결과를 전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주요 일정은 20일에 집중됐다. 시 주석을 비롯해 리커창 총리, 장더장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 등 권력서열 1∼3위를 모두 만났다. 장가오리 부총리도 두테르테 대통령과 함께 양국 경제 포럼에 함께 참석했다.
미국은 두테르테 대통령의 방중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전날 필리핀 교민 간담회에서 “이젠 미국과 작별을 고할 시간”이라며 “더 이상 미국의 간섭이나 미국과의 군사훈련은 없다”고 밝히기까지 했다. 지난 19일에는 마닐라에 있는 미국대사관 앞에서 1000여명이 반미 시위까지 벌였다.
하지만 두테르테 대통령이 외교의 중심축을 미국에서 중국으로 완전히 옮기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홍콩 명보는 미국의소리(VOA) 방송의 최근 여론조사를 인용해 “필리핀 국민의 76%는 여전히 미국에 믿음을 갖고 있고 중국은 22% 불과하다”면서 “군부는 두테르테 대통령의 반미 시각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베이징=맹경환 특파원 khmaeng@kmib.co.kr
두테르테 “중국-필리핀 관계는 봄날”
입력 2016-10-21 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