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미정의 삶의 안단테] 명품 피아노를 사랑하는 이유

입력 2016-10-21 21:27

최근 공연장이나 음악대학에서 악기구입을 담당한 선후배 음악가들이 악기에 대한 특별한 이해가 없는 행정 기관이나 절차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한 일이 있었다. 전문성에 대한 불충분한 이해가 큰 예산을 쓰고도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결과를 가져오기에 브랜드명을 직접 거론하는 것에 대한 이해를 구하며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을 전한다.

스타인웨이 피아노는 명품 피아노다. 전 세계 권위 있는 콘서트홀의 90 퍼센트 이상 이 피아노가 있다. 피아니스트가 연주를 요청 받을 때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이 스타인웨이 피아노가 있는가이다. 또 음악대학에 이런 급의 피아노가 몇 대가 있는지가 그 대학 음대의 수준과 규모를 바라보는 시각이기도 하다.

좋은 피아노는 일단 아름다운 음색을 가지고 있다. 어떻게 쳐도 똑같은 소리가 나는 기계적인 아름다움이 아닌, 다양한 의미와 느낌을 풍부함과 따뜻한 음색을 유지한 채로 전달할 수 있는 소리여야 한다. 입문자 수준의 피아니스트에겐 전자피아노나 보급형 피아노, 명품 피아노는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예술가들에게는, 예전에 유행하던 일회용 카메라와 최고수준의 라이카 카메라를 비교하는 것과 같다. 이 외에도 차이점은 논문 수십 편에 기록될 수 있는 내용이지만, 경험에 의한 개인적 스타인웨이에 대한 숭배(?)이유는 액션에 있다. 액션이라 함은, 손끝에서 건반을 치면, 마지막 소리가 울려퍼지는 해머(현을 울리는 망치)까지의 메커니즘을 이야기 하는데, 피아노마다 천차만별이다.

명품 피아노들은 손에 밀착된다. 그리고 1분, 2분 연주를 진행하다 보면 손만이 아닌 몸 안의 무게중심을 찾아 준다.

그래서 그 무게중심으로 인해 에너지가 순환되는 느낌이다. 한 마디로 말해 쓸데없는 긴장감을 몸에 축적시키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피아노는 내가 몸 안의 무게 중심을 찾아야 만이 최상의 소리를 내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연주 때 내 귀가 최상의 소리를 추구하는 것과 내 몸이 힘의 중심(단전)을 찾는 것이 합치되도록 한다는 말이다.

만일 피아노가 이 지점을 합치해 주지 못하면 연주자의 귀가 그 피아노 안에서 최상의 소리를 추구하면 할수록, 10분, 20분 뒤에 내 몸은 이상한 긴장감을 형성해 연주자의 귀와 몸이 따로 놀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좋은 연주를 할 수 없고, 소리를 통해 정신과 영혼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예술행위는 존재할 수가 없게 된다.

완벽하게 잘 관리된 좋은 피아노를 칠 때마다, 몸의 중심과 화합을 이루게 된다. 이는 또하나의 진리를 상기시킨다. 몸의 무게 중심을 잘 찾으면 오랜 시간 연습을 해도 피곤하지 않는 것처럼, 고단한 삶을 지치지 않고 아름답게 살아 낼 수 있는 삶의 중심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동안 소리와 몸, 그 균형을 찾아주는 좋은 악기들과의 영적인 대화는 내게 하나님에 대한 순수한 사랑의 상태, 존재의 근원을 깊숙하게 경험하는 통로가 되어왔다.

예술에게 인간을 드러내는 거울의 역할을 주려면, 어느 지점부터는 행정적 잣대가 아닌 예술적 잣대를 적용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지점을 모든 사람이 이해하는 사회를 희망해 본다.

임미정<한세대 피아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