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호의 골목길 순례자-광양제철소] 검정 고무신 신은 파란눈의 이방인

입력 2016-10-21 21:27
윌리엄 린튼과 유진 벨 선교사의 딸 샬렛 벨의 결혼식 사진(위). 순천기독결핵진료소 한국기독교선교역사박물관에 전시된 윌리엄 린튼의 셋째 아들 휴 린튼의 검정고무신(아래).
최석호 목사
1885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두 선교사가 서울에 들어온다. 서울에 첫 교회를 설립한다. 그로부터 7년 뒤 안식년을 맞은 언더우드 선교사는 미국 테네시주 내쉬빌에서 한국에 선교사를 파송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마침내 1892년 미국 남장로교 해외선교부는 선교사 7인을 한국에 보낸다.

7인의 선발대에 이어서 1895년 한국에 도착한 유진 벨 선교사 부부는 1897년 전라도 나주로 내려간다. 나주 양반들은 유진 벨의 예수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1898년 유달산 북쪽 기슭 양동에 목포선교부를 개척한다. 유진 벨, 오웬, 프레스톤, 포사이드 등 선교사들은 양동교회, 목포진료소, 정명여학교, 영흥학교 등을 차례로 세운다. 1904년 성탄절을 기해 양림산 남동쪽 기슭에 광주선교부를 개척한다. 유진 벨, 오웬, 놀란, 그레이엄 등 선교사는 북문안교회, 광주제중원, 숭일학교, 수피아여학교를 차례로 개설한다.

1912년 조지아공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윌리엄 린튼은 군산 영명학교에서 교육선교사로 첫 사역을 시작한다. 린튼 선교사는 1922년 유진 벨 선교사의 딸 샬렛 벨과 결혼한다. 1940년 일제는 선교사를 강제로 추방한다. 1946년 한국 파송 선교사 중에서 제일 먼저 전주로 돌아 온 윌리엄 린튼 선교사는 신흥학교를 복교한다. 1956년에는 숙원이었던 기독대학 한남대학교를 설립한다. 1960년 소천한다.

휴 린튼은 아버지 윌리엄 린튼의 선교사역을 잇는다. 1926년 선교지 군산에서 태어난 셋째 아들이다. 한국전쟁 휴전과 함께 전역한 휴 린튼은 1954년 순천에서 선교사역을 시작한다.

마치 한국 사람처럼 가부장적이었던 휴 린튼은 ‘순천의 검정고무신’이라는 별명을 얻는다. 항상 검정 고무신을 신었다. 여섯 자녀들에게도 신겼다. 낡아서 너덜너덜 구멍 뚫리면 타이어 수리하는 곳으로 가지고 가서 땜질해서 신었다. 검정 고무신 신고 전남과 경남 남해안 지역 그리고 호남 내륙에 600여 교회를 개척한다. 1970년대 10년 동안 20만평을 매립한다. 자립의지를 가진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분배한다. 지금 그 간척지에 광양제철소가 있다.

최석호 <목사·한국레저경영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