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펜의 랜디 존슨’ 밀러, 68년 만의 우승 이끌까

입력 2016-10-20 18:31 수정 2016-10-20 21:22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선수들이 20일 캐나다 온타리오주 토론토 로저스센터에서 열린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5차전에서 승리한 뒤 기뻐하고 있다. 클리블랜드는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월드시리즈에 진출했다. AP뉴시스

특급 좌완투수 앤드류 밀러(31·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영입은 클리브랜드에게 신의 한수나 다름없었다. 클리블랜드는 카를로스 카라스코, 대니 살라자르, 트레버 바우어 등 세 명의 선발투수가 부상을 당하는 악재 속에서도 19년 만에 월드시리즈(WS)에 진출하는 기적을 일궈냈다. 선발투수 없이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비결은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시리즈(ALCS) 최우수선수(MVP) 밀러의 존재 덕분이다.

20일 캐나다 온타리오주 토론토 로저스센터에서 열린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ALCS 5차전. 3-0으로 앞선 클리블랜드의 테리 프랑코나(57) 감독은 과감하게 승부수를 던졌다. 4⅓이닝 2피안타 무실점으로 호투를 펼치고 있던 선발투수 라이언 메릿을 5회 1사에서 브라이언 쇼와 교체한 것이다. 이어 6회 1사에서는 셋업맨 밀러를 투입했다. 밀러는 2⅔이닝 동안 단 1개의 안타만 내주며 허리를 굳건히 지켰다. 밀러에 이어 마무리 코디 앨런이 마지막 이닝을 틀어막고 WS 진출을 결정지었다.

시리즈 전적은 4승 1패. 밀러는 ALCS 5경기 중 4차전 한 경기만 빼놓고 모두 등판했다. 단 1실점도 허용하지 않았다. 4경기에 등판해 7⅔이닝을 소화하며 탈삼진을 14개나 뺏어냈다. 지난 시리즈에서도 활약이 좋았다. 올 포스트시즌 총 6경기에서 1승 1세이브 4홀드를 기록했다. 수치로 보면 더 놀랍다. 11⅔이닝 3피안타 21탈삼진 무볼넷 무실점이란 기록을 남겼다. 삼진률은 60%가 넘는다.

밀러는 올 시즌 메이저리그(MLB) 트레이드 마감 시한을 하루 앞둔 지난 8월 1일 뉴욕 양키스에서 클리블랜드로 이적했다. 68년 만에 세 번째 WS 우승에 도전하는 클리블랜드가 마지막 퍼즐을 맞추고자 칼을 꺼내든 것이었다. 유망주를 4명이나 내주는 출혈을 감수하고 리그 최정상급 불펜투수 밀러를 데려왔다. 밀러는 클리블랜드 이적 후 3세이브 9홀드 평균자책점 1.55로 마운드에 안정감을 더했다. 그리고 그 활약을 가을야구로 옮겨왔다.

밀러의 이타적인 성향도 박수를 받고 있다. 밀러는 포스트시즌 8경기 중 2경기만 제외하고 모두 등판했다. 혹사 아닌 혹사를 당하고 있지만, 불평 하나 없이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소화해내고 있다. 오로지 클리블랜드의 WS 우승에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는 팀 승리를 위해서라면 투구수 따윈 중요치 않다고 말한다. “포스트시즌 전 경기에 등판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프랑코나 감독의 경기운용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프랑코나 감독은 정확한 승부처를 예측해 밀러의 등판 시기를 조율하고 있다. 선발 마운드의 공백을 노련한 경기 운영으로 메우고 있다. 2004년 보스턴 레드삭스를 지휘하던 시절 ‘밤비노의 저주’를 깼던 지도력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한 셈이다. 한 박자 빠른 투수교체와 적재적소의 선수기용은 클리블랜드를 마침내 WS로 이끌었다.

클리블랜드는 1948년을 마지막으로 지난해까지 67년 동안 탈환하지 못한 WS 우승의 기회를 잡았다. WS 맞대결 상대는 시카고 컵스와 LA 다저스의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NLCS) 승자다. 컵스와 다저스는 2승2패로 호각세를 보이고 있다. 클리블랜드로선 체력을 비축할 시간을 벌었다. 밀러와 프랑코나 감독의 만남이 클리블랜드의 WS 우승으로 이어질지 지켜볼 일이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