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경주 지역에서 큰 규모의 지진이 일어났고, 그 후에도 여진이 지속돼 우리 국민 모두가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지진 자체만이 아니라 가까이 있는 원자력발전소가 혹 변을 당하면 온 나라가 엄청난 재앙에 휩싸이게 될 것에 대한 염려와 걱정과 근심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왜 지진이 일어나는지는 알지만 언제 어떤 규모로 지진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도, 지진을 막을 수도 없는 것이 더욱 우리를 불안하게 합니다.
그런데 오래전 인도네시아에서 일어난 쓰나미를 무슬림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발언해서 물의를 일으킨 한 대형교회 목사가 있었습니다. 일어날 수 있는, 그러나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자연재해를 특정 종교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해석하는 것은 지나치게 자의적이고 위험한 일입니다.
인간 때문에 일어났다는 개연성이 확실한 기후변화에서 촉발된 재난은 인간에 대한, 인간에 의한 심판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지진처럼 언제 일어날지 예측할 수도 막을 수도 없을 뿐더러 종교의 유무를 가리지 않고 피해자를 양산하는 자연재해를 하나님의 심판으로 해석하는 것은 지나친 일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서가 소돔과 고모라에서 일어난 지진(암 4:11)을, 주전 8세기 예언자 아모스는 여로보암 2세의 통치기간에 일어난 지진(암 1:1)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해석한다는 것입니다. 지진만이 아니라 가뭄과 메뚜기 떼의 습격 같은 자연재해도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해합니다. 아모스는 하나님께서 불을 보내기도 하시고, 비를 내리게도, 내리지 않게도 하시고(암 4:7), 메뚜기도 보내시고, 잎마름병과 깜부기병도 내리시고(암 4:9), 기근도 보내신다고 예언합니다.
성서의 증언과 예언자 아모스의 선언을 우리는 과학혁명 이전 시대에 살았던 인간의 무지와 어리석음, 견강부회(牽强附會)로 치부할 수 있을까요? 가뭄이 들거나 재난을 당하면 왕이 부덕해서 그렇다고 회개하며 하늘에 제사를 드린 것도 덕치를 이상으로 한 옛 왕정사회의 일이지, 지금은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이 아닐지 모릅니다. 지진을 비롯한 천재지변을 한 나라 지도층의 부정부패와 백성의 타락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보는 것은 정신 나간 열광주의자들이거나 누구의 책임도 아닌 재난을 빌미로 권력층을 비판하려는 악의적인 정치세력일 것입니다.
그러나 성서는 지진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해석합니다. 천재지변도 한 나라의 지도층과 백성의 윤리적 타락과 부패의 결과이고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것이지요. 부정부패의 영어(커럽션) 어원은 ‘관계의 단절’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멸망한 것은 지도층이 부패했기 때문이고, 이들이 부패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백성과의 관계가 이미 단절됐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부패했기 때문에, 죄를 지었기 때문에 관계가 단절된 것이 아니라 관계가 이미 단절되었기 때문에 부패하게 되고, 죄를 짓고, 마침내 심판과 파멸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서가 인간이 막을 수 없는 치명적인 자연재해를 지도층의 부정부패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해한 것은 우매한 미신을 선동하거나 자연과학에 대한 무지 때문이 아니라, 지도층의 ‘무한책임’ 때문입니다.
한 나라의 지도층은 모든 국민에 대하여, 모든 사태에 대하여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도층이 아무리 국민을 동서남북으로, 적과 아군으로 편 가른다고 해도 지진은 누구도 편 가르지 않고 무너뜨리고 삼킬 것입니다.
채수일 경동교회 담임목사
[바이블시론-채수일] 지진은 하나님의 심판인가
입력 2016-10-20 18: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