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김준엽] 갤럭시S8에 바란다

입력 2016-10-20 17:21

두 달 전 이 지면을 통해 갤럭시 노트7의 초반 돌풍이 담은 의미에 대해 썼다. 노트7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삼성전자 조직문화가 변하는 조짐이 보이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하지만 장밋빛 미래가 예상됐던 노트7의 운명은 출시 54일 만에 끝났다. 노트7은 삼성전자 스마트폰 사업의 오점으로 남게 됐다. 담당 기자 입장에선 당혹스럽다. 최고의 스마트폰이라고 치켜세웠던 제품이 알고 보니 불량품이 됐기 때문이다. 노트7이 발화 사고에 휘말릴 줄은 아무도 몰랐다는 것 정도가 변명거리가 되겠다.

결과적으로 이런 제품을 시장에 내놓은 삼성전자는 비판받아야 한다. 다만 결과는 꾸짖더라도 노트7이 만들어지는 과정까지 비난받아야 할 것인지는 생각해봤으면 한다. 무엇보다 걱정되는 건 과거로의 회귀다. 노트7 실패로 과거 방식이 옳았다고 돌아가자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지금 잃은 것보다 많은 걸 놓치게 된다.

노트7 사태는 본질적으로 한정된 스마트폰의 물리적 공간에 더 다양한 기능을 넣으려다가 발생한 문제다. 남보다 먼저 홍채 인식 기능을 넣었고, 디자인을 멋지게 하면서도 더 많은 배터리 용량을 넣으려고 시도했다. 방수방진, 고속 무선 충전 등 아직 다른 스마트폰 업체가 정착시키지 않은 기능도 빽빽하게 채웠다. 이런 기능은 일러야 내년에나 경쟁 업체들이 따라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동안 삼성전자에 ‘퍼스트 무버’가 되라고 주문했던 것에 대한 삼성전자의 응답이었다.

그 과정에서 이전과 다르게 내부 소통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모습도 보였다. 삼성전자는 최근 몇 년 동안 수직적이고 경직된 조직문화를 바꾸려고 여러 시도를 했다. 수십 년간 삼성전자의 성공방정식으로 받아들여졌던 ‘패스트 팔로어’ 전략의 수명이 다했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오랜 기간 지속된 관성이 하루아침에 바뀔 리는 없다. 다만 노트7 탄생 과정에서 변화의 조짐을 약간이나마 보기 시작했다. 때문에 노트7 사태를 두고 황제식 경영의 폐해라거나 조급증이 불러온 참사라는 지적은 본질에서 벗어난다. 혁신을 하려다 실패한 사안을 두고 의사결정, 진행과정, 결과까지 모든 게 잘못됐다고 부정하는 건 무책임한 비판이다.

문제는 노트7 이후다. 내년에 나올 갤럭시S8을 소극적으로 접근하지 않아야 한다. 갤럭시S8은 삼성전자가 노트7에서 시도했던 혁신과 함께 안전에 대한 우려도 없는 제품으로 소비자 앞에 나타나야 한다. 문제없는 제품에만 집중해 혁신을 포기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 삼성전자는 이번 일을 계기로 혁신과 안정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기업으로 한 단계 올라서야 한다. 그게 노트7 문제로 몇 차례나 판매점을 방문하며 불편을 감내한 소비자에 대한 가장 확실한 보답이다. 폭발할지 모르는 불안감에도 노트7을 계속 쓰겠다고 하는 마니아들을 어리석은 소비자로 만들지 않는 길이다. 갤럭시S8이 안전하지만 밋밋한 제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면 삼성전자 스마트폰 사업은 지금보다 더 큰 위기에 처할 수 있다.

그리고 노트7 발화의 원인은 반드시 찾아야 한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스스로 해답을 내놔야 한다. 만든 사람이 원인을 못 찾는데 외부 전문가라고 뾰족한 방법이 있을 리 없다. 국가기관이나 외부의 힘에 기대지 말았으면 한다. 공신력은 생길 수 있지만 소비자 신뢰를 회복하는 데는 부족하다. 도움은 받되 답은 스스로 내놓길 바란다. 삼성전자는 소비자의 신뢰를 회복하고 싶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소비자들도 삼성전자를 다시 믿고 싶어한다. 열쇠는 노트7 발화 원인을 찾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다.

김준엽 산업부 차장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