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히스토리] 세계 4大 런웨이 K-모델 '당당 워킹'

입력 2016-10-20 17:39
최소라
신현지(왼쪽), 정호연(오른쪽)
배윤영(왼쪽), 이봄찬(오른쪽)
서울 동대문은 어스름 달빛이 비치는 밤에 더욱 활기를 띤다. 서울의 밤을 대표하는 명소지만 이번 주는 대낮부터 소란스럽다.

서울디자인재단 주최로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리고 있는 서울패션위크를 찾은 이들로 북새통이다. 지난 17일 전야제를 시작으로 막을 올린 '2017 S/S 헤라서울패션위크'는 22일까지 이어진다. 서울패션위크는 국내외 바이어들에게 내년 봄여름 옷을 미리 보여주고 수주를 받는 행사다. 이번 서울패션위크에는 디자이너 브랜드 41개와 기업 6곳이 참가해 패션쇼를 진행하고 있다. 또 100여개의 유수 디자이너 브랜드 및 신진 디자이너의 수주회가 진행되는 '제너레이션 넥스트서울'도 열리고 있다.

이번 서울패션위크 패션쇼에는 디자이너보다 더욱 주목받는 패션 모델들이 있다. 최소라 배윤영 이봄찬 정용수 …. 이들은 바로 앞서 열린 해외 컬렉션의 유명 디자이너 무대에 섰던 국제파들이다. 그동안 국내 모델들이 해외 컬렉션 무대에 꾸준히 진출해 왔지만 올해는 유난히 분주하다. K 뷰티, K 푸드에 이어 K 모델 시대가 열리고 있는 셈이다.

패션 모델은 언제 등장했을까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 피에르 가르뎅은 “모든 쇼는 모델에 의해 좌우된다”고 했다. 그만큼 패션쇼에서 중요한 요소이지만 모델이 등장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조각이나 회화 분야에서 모델이 존재한 것은 BC 400년,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옷을 위한 모델이 나타난 것은 19세기다. ‘파리 오트 쿠튀르의 아버지’로 불리는 샤를 프레드릭 워스(1825∼1895)는 계절마다 새로운 스타일의 옷을 선보이면서 움직일 때의 옷 모양새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살아있는 마네킹, 즉 패션 모델을 활용했다. 살아 있는 마네킹 1호는 워스의 아내인 마리 버넷이었다. 1920년대 들어서면서 디자이너에게 모델을 소개해주는 에이전시가 등장할 만큼 패션모델은 전문직종으로 자리 잡았다.

국내에서 패션모델이 등장한 것은 20세기 들어서다. 유학을 다녀온 노라노 여사가 1956년 반도호텔(현재의 조선호텔)에서 패션쇼를 했다. 그게 우리나라 첫 패션쇼였고, 영화배우 가수 등 연예인이 모델로 나섰다. 1968년 앙드레김이 패션쇼를 하면서 비로소 전문 모델이 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국내에 모델에이전시가 생긴 것은 80년대다. 모델라인(1979년) 모델센터(1984년) 등이 직업 모델을 양성했다.

패션모델의 해외진출

동양인 모델이 해외 유명 패션쇼 무대에 서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이다. 4대 컬렉션으로 꼽히는 파리 뉴욕 밀라노 런던을 비롯해 패션 흐름을 좌우하는 컬렉션 패션쇼 무대는 백인 모델이 점령하고 있다. 디자이너들이 다양성 확보 차원에서 흑인이나 동양 모델들을 한두 명 끼어 넣고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 모델이 세계 패션 무대에 진출한 것은 1978년이다. 피에르 가르뎅의 초청을 받아 모델 전원기가 파리 프레타 포르테 무대에 섰다. 이후 박영선 최미애 이종희 등이 해외 무대에 소개됐다. 1998년 노선미·조희주가 크리스찬 디올 쇼에 동양 모델로는 유일하게 서기도 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장윤주와 송경아가 뉴욕과 파리에서 활동 했다.

혜박이 2005 가을 겨울 밀라노 컬렉션 프라다 쇼에 동양인으로는 처음 발탁되면서 한국 모델의 존재가 주목받았다. 프라다쇼에 백인 이외의 모델이 선 것은 흑인 모델 나오미 캠벨 이후 처음이어서 현지 언론들까지 관심을 보였다. 혜박은 프랑스 브랜드 발망과 이자벨 마랑의 무대에도 동양인 최초로 올랐다. 한혜진은 2007 봄여름 밀라노컬렉션 구찌 쇼에 섰고, 2008년 가을 겨울 뉴욕 컬렉션의 안나수이 쇼에선 무대의 마지막을 장식하기도 했다. 강승현은 2008년 ‘포드 수퍼모델 오브 더 월드’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1등을 차지해 주목받았다.

2013년부터는 문화체육관광부가 한국모델협회와 손잡고 패션모델 해외진출 사업을 펼칠 만큼 정부의 관심도 높아졌다.

K-모델의 시대가 열리다

최근 들어 한국 패션 모델들의 해외 활동은 점차 활발해지고 있다. 특히 올해는 한국 모델들이 수십 개의 내로라하는 컬렉션 패션쇼 무대에 올랐다.

지난 3월 패션 모델들에게는 ‘꿈의 무대’로 꼽히는 파리 컬렉션의 샤넬 패션쇼에 한국인 모델이 3명이나 나섰다. 프랑스 파리의 그랑팔레에서 열린 샤넬의 2016 가을 겨울 패션쇼에 수주·최소라·신현지가 칼 라거펠트의 옷을 입고 무대를 누볐다. 특히 최소라는 그 시즌에 루이비통 디올 랑방 마르니 프라다 펜디 등 세계적인 디자이너 브랜드 51개의 무대에서 카리스마를 뽐냈다. 세계 모델들의 순위를 발표하는 ‘모델스닷컴’에서 선정한 2016 S/S 톱쇼(TOPSHOWS) 포함 런웨이 부문에서 아시안 1위를 차지했다. 최소라는 이번 가을 시즌에도 뉴욕·런던·밀라노 패션위크에서 마크 제이콥스, 알렉산더 왕, 프라다 등 25개 쇼에 캐스팅됐다. 그리고 루이비통에선 “파리 패션 위크 기간 내 우리 무대만 서라”는 ‘특명’을 받았다. 바로 익스클루시브(독점) 모델로, 그 지역 패션위크의 다른 패션쇼에는 설 수 없는 대신 특급대우를 받는다. 이번 뉴욕 패션위크를 통해 해외 무대에 데뷔한 신인 정호연도 최소라와 함께 루이비통의 독점 모델로 활약했다. 배윤영도 이번 시즌 프라다의 독점 모델로 밀라노 패션위크에 섰다. 파리 패션위크에선 디올 쇼를 비롯해 로에베, 끌로에, 소니아 리키엘 등의 무대에 올랐다. 신현지는 이번 시즌 샤넬, 이자벨 마랑, 질 샌더, 버버리 등 32개 쇼에 섰다.

남자 모델들도 여성들에 뒤지지 않는다. 이봄찬 정용수 조환 등은 올봄과 가을에 연이어 빅쇼에 서면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봄참은 이번 시즌에 돌체&가바나, 펜디 등11개 무대에 올랐다. 정용수는 코치 프라다 등 6개 쇼에 섰다. 조환도 비비안웨스트우드 세루디 등 13개 쇼에 나섰다. 테은은 돌체앤가바나 발망 쇼 등에서 세계적인 모델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올해 특히 세계적으로 K 모델 바람이 거센 이유는 뭘까.

모델에이전시 YG케이플러스 신동선 이사는 “무엇보다 K 팝 등 한류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이 가장 큰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에스팀 이보라 이사는 “그동안 선배들이 꾸준히 도전하면서 쌓아온 경험과 대형 모델 에이전시들이 구축해온 해외 네트워크가 시너지 효과를 내기 시작한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패션업계에선 한국 모델들의 해외 진출이 K팝과 K뷰티에 미치지 못했던 K패션의 이미지 제고와 경쟁력 강화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