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성경 속 진리?

입력 2016-10-19 21:08
이 여성들은 언제쯤 교단 총회에 들어갈 수 있을까. 총신대 출신 여성 교역자들이 지난달 말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총회가 열린 서울 충현교회 앞에서 ‘여성에게도 목사 안수를 하라’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시위 중이다. 국민일보DB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1889∼1976)의 말이다. 언어를 통해 우리 삶이 구성되고 확장된다는 의미다. 이 말대로라면 우리는 그리스도교 안에서 사용하는 ‘신앙의 언어’를 통해 우리의 믿음을 재구성해볼 수 있다. 현재 교회를 지배하는 언어를 비판적으로 해석하고 이에 반기(叛起)하는 책이 잇따라 출간됐다. 저자는 모두 신학을 공부한 여성들이다.

바바라 브라운 테일러는 ‘잃어버린 언어를 찾아서(비아)’에서 우리가 기독교의 ‘기둥’이 되는 단어인 ‘죄, 참회, 구원’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테일러의 우아한 문체는 우리가 잃어가는 언어가 신앙의 ‘집’에 얼마나 큰 위협인지를 반어적으로 드러낸다. 성공회 사제이자 대학 교수인 테일러는 2014년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명에 꼽혔다.

“설교자가 설교단에 서서 사람들을 향해 직접 죄를 선포하던 시대는 오래전에 지나갔다.…설교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죄의 경험과 그 여파를 생생하게 묘사해서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죄가 이미 현존하고 있음을 식별해내도록 돕는 일뿐이다(42쪽).”

목회자들은 다원주의와 세속주의 물결에 밀려 어느새 ‘죄를 참회하라’는 말 대신 ‘상처를 치유하라’거나 ‘처벌받을 수 있다’는 의학적, 법률적인 표현을 쓴다. 저자는 이 현상을 퇴화라고 보고 죄에 직면하라고 조언한다. ‘우리가 죄인임을 고백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구원 받는다’는 것을 진리로 믿는 기독교인이기 때문이다.

“우리 내면에는 텅 빈 곳이 있으며 이를 채울 수 있는 분은 하나님뿐이다.…죄가 우리의 적이라 믿지 않는다.…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 있음을 보게 될 때, 그때에만 돌아설 수 있다. 죄는 우리의 유일한 희망, 진정한 회개의 가능성으로 우리를 깨우는 첫 번째 경고음이다(88쪽).” 테일러는 ‘죄와 구원’의 본질적 의미를 살펴보고, 그 심원한 의미를 되살리고 있다.

‘잃어버린 언어를 찾아서’가 시대적 조류 속에 상실돼가는 신앙 언어를 구조한다면, 강호숙 박사가 낸 ‘여성이 만난 하나님(넥서스CROSS)’은 남성 중심적 성경 해석과 가부장적인 한국교회의 풍경을 고발한다. 여기에 올바른 이해까지 제시해 여성을 위한 ‘한국교회 생활백과’라는 인상을 준다.

저자는 “남성이 더 강하고 완전하기 때문에 예수는 남성의 몸으로 왔다”고 한 중세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의 주장에 반대하며 “예수님은 남자 없이 성령으로 잉태된 여자의 후손(마 1:18∼20)”이라고 강조한다(142쪽). 일부 교단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전 14:34)’ 등을 근거로 여성에게 목사 안수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해 “남녀의 역할 문제는 진리가 아니라 문화의 문제(75쪽)”라고 꼬집는다. 저자가 경험한 한국교회의 ‘모순’은 서글픈 웃음을 준다. “합동 총회는 음행한 목사도 들어가고, 거짓말과 도둑질(표절)한 사람도 들어가고, 가스총도 들어가고, 괴악하고 악독한 목사까지 모조리 들어가건만 어찌된 영문인지 여자는 절대 못 들어가는구나(51쪽).” 강 박사는 19일 “하나님이 남녀를 동등한 인격체로 빚었다는 것을 기반으로 성경 본문을 이해하고, 교회 제도를 개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앨리스 매슈스의 ‘여성을 위한 설교(새물결플러스)’는 기존 설교에 남성 편향적 시각이 어떻게 작용하고 이런 설교가 여성을 어떻게 소외시키는지를 살핀다. 설교단의 언어를 여성적 시각에서 구조적으로 분석한 것이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사실일까?’ ‘여성과 권력의 문제’ ‘청중으로서의 여성을 이해하기’ 등을 주제로 다룬다.

여성 저자의 주요 활동 분야가 양육이나 상담, 간증으로 사실상 국한돼 있는 가운데 이번처럼 신앙과 목회 분야에서 신간이 연이어 나오는 경우는 많지 않다.

20년 경력의 중견 편집자는 “기독 저자 다수가 목사나 교수인 것은 한국교회 다수 교단이 여성에게 목사 안수를 주지 않고, 신학교의 여교수 비율도 낮기 때문”이라며 “교회 문화와 제도가 여성을 남성과 동등하게 존중할 때, 여성들의 저술 활동도 장기적으로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스도교 안에서 점점 커지는 여성의 목소리가 반가운 이유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