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비행장 소음 배상금 도둑’… 브로커까지 판친다
입력 2016-10-19 04:00
군 비행장 인근 일부 주민의 소음피해 중복소송이 사실로 확인되면서 소음피해 배상 전반의 실태 파악이 불가피해졌다. 이미 군과 검찰은 배상금 중복수령자에 대한 추가 조사를 진행 중이다. 향후 부당하게 받아낸 배상금을 국가에 반납하는 사례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가능성도 크다.
감사원 조사로 최초 드러난 중복수령
소음피해 배상금 중복수령 실태는 2011년 감사원이 진행한 국방부 기관감사를 통해 최초 적발됐다. 당시 감사원은 2007년 국방부를 상대로 제기된 소음피해 소송 중 손해배상이 완료된 27건을 검토했다. 이 과정에서 감사원은 원고 75명의 소송대리인이 중복소송을 제기해 손해배상금 1억3979만7640원을 부당청구한 사실을 발견했다. 국방부는 2010년 12월부터 2011년 1월까지 관련 손해배상금 1403억7237만원을 지급한 상태였다.
중복소송을 확인한 감사원은 2009년 1만315명이 소송을 제기해 총 178억5846만원(이자 포함)을 배상받은 사건을 표본으로 추가 검증을 진행했다. 그 결과 중복소송 제기자 6명이 발견됐다. 이외에도 소송 전후 사망했거나 거주지가 불명해 배상금을 수령하지 못할 것으로 보이는 원고 수가 238명이나 돼 배상금 3억8239만원이 잘못 전달된 것으로 추정됐다.
검찰, 중복수령자 샅샅이 뒤진다
감사원과 군 조사를 통해 배상소송 문제점이 드러나자 국가소송을 대행하는 서울고검이 진상 파악에 나섰고, 지난해 말부터 본격적인 환수 절차에 착수했다.
군과 검찰이 적극적으로 배상금 중복수령자 적발에 나서고 있는 만큼 향후 적발 사례는 더욱 늘 것으로 보인다. 공군은 일부 중복소송 적발 이후 엑셀 프로그램을 이용해 소음피해 소송을 제기한 원고 전원의 이름과 청구 기간을 입력한 후 중복되는 이름이나 기간이 있는지 비교하는 방식으로 일일이 확인하고 있다. 법무부와 고검도 공군과 별개로 전국적인 군 비행장 소음피해 배상금 중복수령자 적발을 추진 중이다. 이번에 적발된 대구 사례 이외에 광주, 수원, 원주 등에서 제기된 관련 소음피해 소송 원고들에 대한 조사도 검토하고 있다.
다만 군과 검찰의 배상금 중복수령 실태 파악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우선 소음피해 배상소송은 소송 기간을 3년 단위로 끊어서 제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소송 기간과 원고가 겹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소송을 제기하는 사람만 해도 전국적으로 수십만명에 달한다. 그만큼 대조해야 할 범위가 넓다는 의미다. 또 원고 이름과 소송 기간이 겹치는지 일일이 대조해야 하는 점도 적발을 더디게 하는 요인이다. 검찰은 불필요한 중복소송을 사전에 막기 위해 ‘중복소송 적발 프로그램’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집단소송 ‘브로커’ 개입 가능성
검찰 관계자는 18일 “배상금 중복소송 과정에 처벌할 만한 불법행위가 있었는지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소송대리인이 전면에 나서는 소음피해 배상 사건의 특성상 브로커가 개입해 허위로 보상금을 청구하는 행위가 있는지 여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 배상금 중복수령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브로커가 개입해 마구잡이로 원고 수를 늘린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이 다수 발견됐다. 교도소에 복역 중인 사람이 소음피해를 봤다고 소송에 참여해 돈을 받아내거나 군대에 가 있는 사람이 원고에 포함돼 복무기간을 고려하지 않고 배상금이 지원되기도 했다. 또 이미 이사를 해 거주하지 않는 사람이 피해자 명단에 포함되기도 했다.
지금까지 적발된 배상금 중복수령자 가운데 형사처벌을 받은 사람은 없다. 다만 검찰은 여러 정황을 살펴보고 있어 ‘브로커’ 및 ‘악의적 중복수령자’ 등에 대해 수사 착수 가능성도 내비치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대구 군 비행장 소음피해 배상 소송을 대리하면서 의뢰인들에게 돌아갈 지연이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변호사가 재판에 넘겨지기도 했다.
현재 검찰은 대부분 배상금이 지급 완료된 2012년까지 제기된 소음피해 배상소송은 중복수령한 사람을 걸러내 돈을 돌려받거나 환수소송을 하고 있다. 2012년 이후 소음피해 배상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서는 중복수령 대상자를 미리 걸러내는 사전조치를 취하고 있다.
글=노용택 기자 nyt@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