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집값 잡는다며 엉뚱한 서민만 옥죄

입력 2016-10-19 00:09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는 2014년 “한여름에 겨울옷을 입은 격”이라며 주택담보대출비율(LTV) 등 부동산 금융 규제를 풀었다. 가계 빚이 급증했다. ‘빚 내서 집 사라’는 신호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뒤늦게 낸 ‘8·25 가계부채 대책’은 오히려 강남권 아파트 값 상승을 부채질했다.

투기심리는 번져가는데 대책은 혼란스럽다. 서민 대출인 보금자리론 대상이 갑자기 축소돼 실수요자들은 불만을 터트린다. 은행은 실수요층 중도금 대출은 조이면서 상속증여전문센터는 확장하는 등 ‘금수저’ 대물림 서비스를 키우고 있다. ‘부익부 빈익빈’이 고착화되는 한국경제의 민낯이 금융권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18일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국정감사에선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더불어민주당 민병두 의원은 “보금자리론 자격 축소는 겨울옷으로 바꿔 입히고선 서민들이 쓰는 보일러를 꺼버린 셈”이라며 “강남 아파트 값을 잡으려면 핀셋 같은 대책을 세워야지 실수요자에게 폭탄을 던지면 어쩌느냐”고 지적했다. 같은 당 김영주 의원은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 꿈을 뺏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주택금융공사는 지난 14일 밤 보금자리론 대출 대상 축소를 공지했다. 고정금리인 적격대출 기준도 강화된다. 이미 한도를 넘겨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국정감사에서 “남은 재원을 서민에게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문제는 한밤중에 갑자기 대출 기준이 뒤바뀌는 행태다. 더민주 박찬대 의원에 따르면 보금자리론은 지난해에도 연간 14조7496억원을 팔아 목표 대비 248%를 기록했다. 올해도 8월 기준 9조4192억원을 넘겼다. 은행 주담대를 규제한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이 2월부터 도입되면서 보금자리론으로 몰릴 게 뻔했는데 대비하지 않다가 심야에 뒷북 대응을 했다는 지적이다. 이사철 내 집 마련을 계획했던 실수요자의 불편은 불가피해졌다.

은행들은 중도금 집단대출을 사실상 중단했다. 오는 31일부터 상호금융회사의 대출도 담보가치 대비 한도가 최대 15% 포인트 줄어드는 등 제2금융권을 겨냥한 대책도 시행된다.

금융권의 대출 문턱은 높아져가는데 부(富)의 대물림을 돕는 은행권의 상속·증여 전문 서비스는 계속 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17일부터 고액 자산가가 몰려 있는 서울 강남·도곡·명동 스타PB(프라이빗 뱅킹)센터에 ‘KB 부동산&상속/증여센터’를 오픈했다고 밝혔다. KEB하나은행은 전 직원 프라이빗뱅커(PB)화를 부르짖으며 세무 법률 상담 핸드북을 만들어 상반기 전국 지점에 배포했다.








나성원 우성규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