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테르테, 반미친중… 내일 시진핑과 회동

입력 2016-10-19 04:53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대통령이 방중을 닷새 앞둔 지난 13일 마닐라에서 중국 신화통신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전통적 우방인 중국과 더 가까워지고 싶다"며 "양자 간 무 역과 경제 협력을 기대한다"고 친중노선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신화 뉴시스

로드리고 두테르테(71) 필리핀 대통령이 18일 중국을 방문했다. 첫 국빈 방문이다. 지난 13일 그는 중국 관영 신화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중국만이 우리를 도울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오랜 동맹국 필리핀이 급격히 중국과 가까워지고 있다.

중국은 극진한 대접에 나섰다. 나흘간 일정을 시작한 두테르테 대통령은 20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국가주석과 만난다. 리커창 총리와 장더장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과도 따로 회동할 예정이다. 중국 공산당 서열 1∼3위가 모두 두테르테와 만나는 것이다.

필리핀과 중국은 불과 몇 달 전까지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를 놓고 날을 세웠다. 그러다 두테르테가 미국과 거리를 두기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중국으로서는 전통적 친미국가인 필리핀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일 호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두테르테는 최근 미국과의 연합 군사훈련 중단을 선언한 데 이어 18일 홍콩 펑황TV 인터뷰에선 “중국이나 러시아와 군사훈련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가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중국과 가까워지려는 것에는 개인적인 요인도 있지만 정치적 실용주의 추구가 깔려 있다고 필리핀 라살대 리처드 헤이다리언 교수가 분석했다. 두테르테가 취임 후 핵심정책으로 추진한 ‘마약과의 전쟁’을 미국이 계속 비난하자 뿔이 난 것이 개인적인 요인이다. 여기에 중국과의 경제협력 확대를 꾀하는 것은 실용주의 노선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최근 태국도 중국 쪽으로 기울고 있어 미국은 동남아에서 오랜 동맹국 2곳과 소원해지고 있다.

중국주재 필리핀대사 산티아고 로마나는 “미국과 너무 가까운 동맹관계는 반중국 연맹으로 보이기 때문에 미국과 거리를 두려는 것이며, 시계추는 중국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두테르테 방문에 앞서 필리핀산 과일 수입제한 해제라는 선물을 선사했다. 방중에 동행한 필리핀 기업인 400명은 중국 기업과 굵직한 투자계약을 체결할 전망이다. 두테르테는 특히 민다나오 지역 철도건설에 중국 기업 참여를 원하고 있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 앤드루 시어러는 “중국이 필리핀을 미국에서 떼어내는 데 성공한다면 동남아에서 미국 동맹세력을 약화시키려던 중국의 오랜 노력이 결실을 맺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필리핀이 ‘친중반미’로 완전히 돌아섰다고 보기 어렵다. 두테르테 본인도 “우리에게 안보우산을 제공하니까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깰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두테르테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피벗(한발을 축으로 회전하는 것)을 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워싱턴 동서센터의 레나토 카스트로 연구원은 “중국이 스카버러 암초(중국명 황옌다오·필리핀과의 영토분쟁지역)에 군사기지를 세우려 한다면 두테르테는 다시 미국에로 돌아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