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영화음악 프로를 듣다가 불현듯 생각이 나 이탈리아의 테너 겸 팝페라 가수 안드레아 보첼리가 부른 영화음악들을 찾아 들었다. 클래식하면서도 팝적인 느낌이 묻어나는 보첼리의 미성(美聲)으로 듣는 영화음악은 OST와 달리 또 다른 맛이 넘쳐났다. 보첼리는 ‘시네마’라는 앨범에서 옛날 영화부터 요즘 영화까지, 클래식한 노래부터 팝송 같은 것까지 다양한 범위의 음악들을 소화해냈다. 우선 아주 옛날 것으로 프레드 아스테어와 진저 로저스 댄싱 콤비의 고전 ‘톱 해트(마크 샌드리치, 1935)’에 삽입된 ‘뺨을 맞대고(Cheek to Cheek)’가 있다. 영화에서는 아스테어가 불렀으나 우리에게는 프랭크 시나트라의 목소리로 더 친숙하다. 다만 보첼리의 노래는 그보다 좀 더 클래식한 느낌을 준다.
또 다른 옛날 영화음악으로 엘비스 프레슬리의 대표곡 중 하나인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Can’t Help Falling in Love)’가 있다. 엘비스 영화 ‘블루 하와이(노먼 터로그, 1961)’의 삽입곡. 엘비스 노래를 보첼리가 부른다. 어떨지 참 궁금하지 않은가.
비교적 요즘 것으로는 ‘여인의 향기(마틴 브레스트, 1992)’에서 맹인 역을 맡은 앨 파치노가 멋들어진 춤 솜씨를 보여줬던 탱고음악 ‘Por Una Cabeza’가 있다. 원래 1935년에 만들어진 아르헨티나 노래. 제목은 경마용어다. 뜻은 ‘말머리 하나 차이로’. 여자에게 끌리는 것을 경마에 빠지는 것으로 비유한 내용. 로맨틱한 노래의 분위기와 보첼리의 분위기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그밖에 보첼리의 본령이라 할 오페라틱한 창법이 돋보이는 ‘밤의 음악(The Music of the Night)’도 있다. ‘오페라의 유령(2004, 조엘 슈마커, 2004)’에 삽입된 노래. 영화에서는 노래에 사실상 문외한인 ‘300’의 액션배우 제라드 버틀러가 불렀다. 그걸 보첼리가 불렀으니 노래를 다시 살렸다고 해야 할까. 수많은 가수들이 부른 영화음악 중에서도 보첼리의 노래는 충분히 상위에 올릴 만하다.
김상온(프리랜서 영화라이터)
[영화이야기] <92> 보첼리의 영화음악
입력 2016-10-18 1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