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내내 싸움만 한 ‘누리과정’
입력 2016-10-18 00:03
4년 동안 연례행사처럼 벌어지는 누리과정 갈등 때문에 올해 서울에선 이런 일이 빚어졌다. 서울시교육청이 “어린이집은 보건복지부 소관이니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할 수 없다”고 나오자 어린이집에서 유치원으로 아이들을 옮긴 학부모들이 많았다. 서울시의회는 “유치원만 지원하면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유치원과 어린이집 예산을 모두 삭감했다. 그런데 정작 정부와 카드회사를 거쳐 예산을 받는 어린이집은 카드회사의 대납으로 정상 운영됐지만, 교육청으로부터 직접 예산을 받는 유치원은 되레 낭패를 봤다. 냉탕과 온탕을 오간 학부모들은 “이럴 거면 ‘낳으면 국가가 키워준다’는 무상보육 공약을 도대체 왜 내건 것이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는 ‘누리과정 치킨게임’이 빚은 혼란의 한 단면일 뿐이다. 학부모는 물론 유치원·어린이집 관계자들이 정부와 시·도교육청에 몰려가 집회를 벌이는 일은 흔한 풍경이 됐다. 그런데도 정부, 정치권, 시·도교육청, 지방자치단체, 지방의회는 편을 갈라 싸우기 바쁘다. 애꿎은 학부모와 아이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
17일 교육계 등에 따르면 누리과정은 보수 정권에서 진보 성향의 교육감이 대거 등장하면서 벌어진 파워게임의 하나다. 예산을 어디에서 부담할 것이냐를 둘러싼 단순한 갈등이 아니다. 이는 보수 성향 교육감이 당선된 지역에서 누리과정 갈등이 심하지 않다는 점에서 확인된다. 교육정책이 정치싸움에 휘말려 들어가면서 문제는 더 꼬였다.
누리과정을 비롯한 무상보육·교육은 박근혜 대통령의 간판 공약이다. 2012년 만 5세를 시작으로 현재 만 3∼5세로 적용 대상이 확대됐다. 대상이 급격하게 늘면서 예산 부담이 증가하자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정부는 법령 개정으로, 시·도교육청은 ‘예산 편성권’으로 난타전을 벌이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해 지방재정법 시행령을 개정해 누리과정 예산을 의무 편성하도록 못 박았다. 교육청은 내국세의 20.27%인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주 수입원으로 운영하는데 교육교부금 안에서 누리과정 예산을 의무 편성하라고 시행령을 바꾼 것이다. 정부는 따르지 않으면 예비비 등을 지원하지 않고, 내년도 교부금도 삭감하겠다고 벼른다.
교육감들은 반발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 공약을 교육청 예산으로 생색낸다는 입장이다. 교육감들도 저마다 공약을 걸고 당선됐는데 누리과정에 예산을 쓴 만큼 교육감 공약 이행을 위한 예산은 줄어든다. 서울, 경기 등 전국 13개 교육청은 지난 6일 결의문을 내고 “내년엔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할 수 없다”고 밝혔다. 교육청들이 “누리과정에 투입할 돈이 없다”고 하자, 교육부는 “교육청이 쓰고 남은 돈을 숨겨놨다”고 반박하고, 교육청에서는 “억지”라고 재반박하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정부는 지난 8월 31일 내년도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지방교육정책지원 특별회계’를 근본적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누리과정 예산을 아예 교육감이 편성하는 교육교부금에서 떼어 내 별도로 내려보내는 방안이다. 총 5조1990억원 규모로 3조8294억원이 어린이집을 포함한 누리과정 지원금이다. 하지만 교육교부금에 포함돼 내려가는 교육세가 특별회계의 재원이다. 종전과 달라진 게 없다. 교육감들과 야당은 “기만적”이라며 반대한다. 내년에도 누리과정을 놓고 똑같은 갈등이 빚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