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논쟁] 아동수당 도입

입력 2016-10-18 18:38
아동수당은 세계 90여개국에서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통상 15∼20세 아이 1인당 월 20만원 정도가 지급된다. 연령이나 자녀 수 또는 소득에 따라 차등화해서 주기도 한다. 아동수당은 아이를 양육하는 비용을 국가가 보조해주는 보편적 복지의 한 축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은 가정뿐 아니라 국가적 책임이라는 공감대가 바탕이 됐다. 국가의 생산성을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미래투자라는 관점도 담겼다.

이 같은 아동수당 도입을 둘러싸고 우리 정치권에서 또다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저출산 대책의 하나로 아동수당을 신설해야 한다는 주장과 막대한 재원 문제 때문에 시기상조라는 반박이 맞서고 있다. 내년 대선을 겨냥한 복지 포퓰리즘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의원이 지난달 28일 아동수당법 제정안을 발의했다. 이 제정안에는 만 12세까지 아동에게 매달 10만∼30만원씩(0∼2세 10만원, 3∼5세 20만원, 6∼12세 30만원)을 바우처(이용권)로 지원하는 내용이 담겼다. 소요 예산은 연간 15조원이 든다.

정부는 막대한 세금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 기존 무상보육, 가정양육수당과도 중복되고 출산율 제고 효과도 불분명하다고 지적한다. 국회의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아동수당 도입에 대한 찬반양론을 들어본다.

글=박정태 논설위원, 삽화=전진이 기자

■ 이래서 찬성 - 이태수 꽃동네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장

아동은 미래의 인적 자원… 사회적 양육 개념 확산돼야


1921년. 아동수당제도가 오스트리아에서 처음으로 선을 보인 해이다. 한 세기 전이다. 프랑스 1932년, 영국 1945년, 스웨덴 1947년, 독일 1954년…. 대다수 선진 국가들은 반세기 전에 도입을 끝마쳤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이 제도가 없는 나라는 미국과 멕시코, 터키, 그리고 대한민국뿐이다.

왜 많은 나라들이 한 세기 전부터 아동이 있는 가족에게 현금을 지급했고 오늘날까지도 그러고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아동의 존재가 갖는 의미를 오래전부터 깨달았기 때문이다. 첫째, 아동에겐 부모의 존재 조건에 상관없이 건강하게 자랄 권리가 있다는 자각. 장유유서와 가부장적 문화 속에서 아동 고유의 권리를 생각하지 못해 온 우리와는 차원이 다르다.

둘째, 아동이 있는 가구의 빈곤 위험성이 훨씬 높기에 이에 대한 복지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자각. 아동을 양육하는 과정에서 빈곤함정에 빠질 수 있으므로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상책이라 생각했다. 2013년 우리나라 취업자가구의 빈곤율은 5.4%, 그러나 한부모가구는 12.7%라는 수치가 이를 뒷받침한다. 그래도 아이를 낳았으면 부모가 죽든 살든 키워야 한다는 야멸찬 시각이 우리에겐 여전히 존재한다.

셋째, 아동은 미래의 인적 자원이기에 사회적 자산이라는 자각.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생산성 높은 노동자들이 필요한데, 아동기의 불행은 미래 경제의 불행이라는 자각이다. 그러나 한국의 보수주의자, 경제주의자들은 이런 긴 안목을 허락하지 않는다. 당장 ‘재원이 없다’라는 말로 일축해 버린다.

요즘 한국에선 아동수당의 의미가 다른 곳에서 찾아진다. 바로 저출산을 막기 위한 방책으로 말이다. 인구절벽, 인구낭떠러지 등의 자극적 언사까지 동원되는 상황에서 아동수당이 거론되고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1.2명이란 합계출산율이 유지된다면 2100년 한국의 인구 총수는 1900만명에 그친단다. 정부는 저출산 대책으로 2011년부터 5년간 40조원 가까이 썼다지만 출산율은 요지부동이다. 예산을 뻥튀기했거나 헛발질했다는 이야기다. 이젠 아동수당을 도입하자는 주장이 정치권으로부터 탄력을 받는 모양새이다.

결론부터 말하지만 아동수당만으로 저출산은 극복되지 않는다. 그래도 아동수당은 도입돼야 한다. 즉, 아동수당은 저출산을 극복하는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필요조건은 된다. 아동수당을 도입한다는 것은 그만큼 이제야 우리 사회도 아동에 대해, 아동을 키우는 것에 대해 우선순위를 높이 두고 있다는 신호탄이다. 저출산 대책으로 시작했다 해도 ‘아동은 우리 모두의 아이’라는 사회적 양육 개념을 드디어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철학과 기조가 우리 사회에 흐를 때 교육, 의료, 주거, 보육 등 전반에 걸친 파격적 제도가 도입될 여지가 커지고, 마침내 어느덧 우리나라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이 그리 힘든 일이 아니라는 체감이 이루어질 수 있다. 더 나아가 한 인간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고 잔인한 여정이 아니고, 기쁘고 행복하고 보람된 것임을 자랑스러워하는 복지국가 대한민국으로 갈 수 있다.

그러나 이즈음에서 보수주의자와 경제주의자들로부터 던져지는 질문이 있다. “재원이 어디 있는가”라고. 그러나 걱정하지 마시라. 4대강 사업 22조원 투입 때는 왜 그런 반문을 하지 않았나. 우리의 경제력 규모에 있어 조세와 사회보험의 수입을 늘릴 객관적 여건이 충분하다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결국 재정확보는 정치적 결단과 국민적 동의에 의해 그 문이 열린다. 문도 안 열어보고 그 뒤에 무엇이 있는지 따지는 동안 ‘아! 대한민국’에는 아이의 울음이 점점 그치고 그 미래도 닫힌다.

■ 이래서 반대 - 이재인 前 한국보육진흥원장

또 다른 복지 포퓰리즘 우려… 진행 중인 사업 해결이 먼저


최근 아동수당 논의가 조심스레 다시 퍼져나가고 있다. 아동수당이란 대략 12세 미만 아동이 있는 모든 가정에 현금 지원을 하는 아동복지제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대부분이 도입하고 있는 상당히 보편적인 제도다. 도입 이야기가 나온 것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몇 년간 워낙 보육비 확대가 가파르다보니 수십조원의 예산이 들어가는 이 제도 논의가 한동안 잠잠했을 뿐이다. 그러다가 내년 대선을 앞두고 20대 국회 각 정당들이 큰 그림 그리기 경쟁에 들어가면서 다시 이 이야기가 불거져나온 것이다.

아동에 대한 재정 투자를 괄목할 만한 수준으로 늘려야 하는 우리 입장에서 볼 때 머지않은 장래에 도입해야 할 제도라는 점은 필자도 인정한다. 그러나 간단치 않은 예산 구조 문제를 그대로 둔 채 이 이야기를 불쑥 꺼내는 것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점을 짚고자 한다. 목적도 중요하지만 방법론이 올바를 때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도입 시점 혹은 순서가 잘못됐다. 또 하나의 보편적 복지제도를 들먹이기에는 이미 벌여놓은 일 처리가 시급하다. 돌이켜보자.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었던 이슈가 무상보육이었다. 주도권 경쟁에서 밀리기 싫었던 여야는 앞다퉈 정부가 반대하는 전 계층 보육료 지급을 강압하며 주도했다. 그 결과 누리과정 예산을 제외하고도 2011년 총 3조9151억원이 들어가던 게 5년 후인 올해 10조원을 넘을 정도로 급속히 확대됐다.

그러나 이런 확대가 무색할 만큼 보육계의 현실은 상처투성이로 흘러왔다. 보육지원 대상을 확 늘리고 나니 보육의 질을 개선할 예산상 여유가 제로가 되어버린 탓이다. 어린이집 경영 개선은 물론 보육교사의 질을 끌어올리는 일도 예산 없이 실효를 거둘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 문제는 놔두고 또 새 어젠다를 던지는 것은 참 무책임한 일이다.

다음으로 도입 방식을 보자. 퍼주기식 경쟁 대신 재원 마련 방안부터 토의하는 게 순서다. 지난 몇 년간 보육계를 있는 대로 멍들게 한 누리과정 예산 파동의 악몽이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지방교육청과 교육부, 보건복지부와 기획재정부 등 정부 당국 간 다툼으로 3세 이상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의 보육료 예산을 제때 배정하지 못하는 바람에 해마다 손에 땀을 쥐는 갈등과 근심걱정이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치킨게임을 방불케 하는 당국 간 다툼도 따지고 보면 무상급식, 무상보육, 반값 등록금 등 각기 수조원 단위의 복지 예산들이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예산에 한꺼번에 얹히면서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터져나온 일이었다. 또다시 예산 여력 문제는 뒷전으로 한 채 솔깃한 정책부터 앞세우는 바람에 못 볼 꼴을 보는 일은 지양했으면 한다.

필자도 아동수당이 오늘날과 같은 저출산 시대에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는 데 동의한다. 국가경제는 적절한 노동력 공급 없이 발전할 수 없으며 그 노동력은 아이 있는 가정에서 상당한 물질적·정신적 비용을 감수할 때 만들어지는 것이다. 당연히 적정한 보상이 필요하다. 앞으로 우리 대한민국은 아동가족 예산을 대폭 늘려야 하고 우선 급한 대로 현재의 배 이상 지출 계획을 짜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소견이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출산율 제고를 위한 통 큰 예산 배정을 위한 중장기적 플랜과 더불어 재원 조달 문제,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재정적·행정적 제도 정비다. 특히 아동 투자를 위한 별도의 예산심의 절차와 주기적인 예산효과 평가 방법론 수립, 전담 부처 신설 같은 큰 그림 제시가 우선 시급하다. 연후에 아동 투자를 앉히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