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서울미술관은 안병광(59·사진) 유니온약품 회장의 컬렉션을 중심으로 건립된 사립미술관이다. 이중섭의 ‘황소’ 등 명화들을 가까이서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서울미술관이 가을을 맞아 두 가지 기획전을 마련했다. 안 회장의 34년간 그림 수집 이야기를 담은 ‘A 컬렉션’과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으로 휴식과 힐링을 건네는 ‘비밀의 화원’이다.
‘A 컬렉션’ 전시장 입구에는 금추 이남호(1908∼2001) 작가의 ‘도석화’가 걸렸다. 안 회장이 1983년 당시 한 달 월급이 23만7000원이었는데 20만원을 주고 처음 산 작품이다. 한 달 월급을 그림 한 점과 맞바꾼 셈이다. 마음을 뒤흔드는 그림을 가지려 하는 열정과 가치는 그 어떤 투자에 뒤지지 않는다는 생각에서다. 이후 안 회장의 그림 구입은 계속됐다.
일반에 잘 공개되지 않는 신사임당의 ‘초충도(草蟲圖)’ 7점도 나왔다. 초충도 18점을 소장한 안 회장은 나머지 11점도 내년 1월 공개할 예정이다. 안 회장은 초충도를 보며 인생의 목표를 돌아봤다고 한다. 주변의 소소한 사물을 그린 초충도를 통해 “내 가족, 내 이웃에 조금 더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고 대화해야겠다”고 다짐했다는 것이다.
의사가 되고 싶다는 아들 방에 걸어두고 응원했다는 이인성의 ‘남산병원 수술실’, 알록달록 꽃무늬 치마와 붉은색 티셔츠를 입은 소녀에게서 꿈과 생명에 대한 간절한 기도가 느껴졌다는 임직순의 ‘포즈를 취하고 있는 소녀’ 등이 눈길을 끈다. 김환기 박서보 이우환 김창열 서세옥 곽인식 백남준 등 한국 미술사를 장식한 거장들의 작품도 전시된다.
안 회장의 컬렉션은 한국현대미술의 숲을 여유롭게 산책하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 길을 지나면 ‘비밀의 화원’으로 들어가게 된다. ‘비밀의 화원’은 영국 작가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의 동화와 조선시대 도화서의 ‘화원(畵員)’에서 차용한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시공간을 초월한 국내외 작가 24명의 작품으로 위로와 행복을 선사하겠다는 것이다.
전시는 네 개의 공간으로 구성됐다. 윤병운 김유정 염지희 반주영 작가의 ‘아무도 남지 않았다’, 박종필 마크퀸 정원 이명호 이슬기 작가의 ‘문은 천천히 열렸다. 천천히’, 진현미 신소영 최수정 전희경 원성원 이정 이재형 한승구 작가의 ‘환상의 뜰’, 무나씨 김태동 전현선 안준 그레이스 은아킴 작가의 ‘비밀스런 연극놀이’ 등이다. 중간에 비밀의 화원 쉼터도 마련됐다.
서울미술관의 또 다른 볼거리는 전시장 뒤쪽에 있는 석파정이다. 석파 이하응의 별장으로 사용하던 건물로 600년 된 소나무와 기와집 등이 운치를 이룬다. 석파정에서는 박술녀 한복연구가의 한복인생 30년 발자취를 담아낸 ‘녀, 생’ 전이 열리고, 야외공원 내 물이 흐르는 길에는 조각 전시 ‘거닐다, 숲’이 개최된다. 내년 3월 5일까지. 입장료 9000원(02-395-0100).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
행복·위로 메시지 미술이 건넨다
입력 2016-10-18 20: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