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순 ‘싱가포르 쪽지’ 정체는… “북과 협의 내용” vs “북한 동향 보고”
입력 2016-10-18 00:01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회고록을 통해 폭로한 노무현정부의 2007년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표결 기권 과정이 정치권의 진실 공방으로 비화하고 있다. 사전 협의인지 사후 통보인지 여부와 북한의 요구를 담은 쪽지의 정체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사실관계를 확인할 공식 기록을 찾기 어려워 실체 규명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송 전 장관은 2007년 11월 18일 자신을 비롯해 문재인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김만복 전 국정원장, 백종천 전 청와대 안보실장이 청와대 서별관에 모여 북한의 의견을 듣고 결정키로 결론내렸다고 주장했다. 그는 회고록에 “내 주장이 계속되자 김 전 원장이 남북 채널을 통해서 북한의 의견을 직접 확인해보자고 제안했으며 문 전 실장이 일단 남북 경로로 확인해보자고 결론을 내렸다”고 썼다.
문 전 대표 측의 주장은 이와 반대다. 문 전 대표 측인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의원은 전날 “11월 15일 안보정책조정회의를 거쳐 기권으로 의견을 모은 뒤 이튿날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 주재 회의에서 기권키로 최종 결정했다”며 “송 전 장관이 찬성 의견을 굽히지 않아 18일 안보실장 주재로 한 차례 안보정책회의를 가졌으나 변경 사항은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의견을 확인해보자”고 했던 것은 결정 사항을 북한에 통보하자는 의미였다고 했다. 16일 회의에서 모든 것이 결정됐지만 이 내용에 강력 반발하는 송 전 장관을 설득하는 과정이 18일 회의였다는 게 문 전 대표 측 입장이다.
송 전 장관은 회고록에 노 전 대통령과의 독대 내용도 공개하며 주장에 힘을 실었다. 그해 11월 20일 ‘아세안+3’ 회의 참석차 방문한 싱가포르에서 백 전 실장이 북측 요구 쪽지를 노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후 백 전 실장이 자리를 뜬 뒤 노 전 대통령이 송 전 장관에게 “북한한테 물어볼 것도 없이 찬성투표하고, 송 장관한테 바로 사표를 받을까 하는 생각도 얼핏 들었다”며 “이렇게 물어까지 봤으니 그냥 기권으로 가자. (북한에) 묻지는 말았어야 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 전 대표 측은 “백 전 실장은 북한 반응 등 동향을 통상적으로 보고했던 것”이라며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은 (의견이 묵살된) 송 전 장관을 배려하려는 특유의 화법”이라고 반박했다.
청와대의 소수 인사만 관여한 상황이다 보니 진실 공방은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이관세 당시 통일부 차관은 통화에서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멤버들이 다 결정을 했고 찬성이냐 기권이냐 싸움만 남아있었다. 실무자가 개입할 여지가 없어 나도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또 북한과의 접촉에 대해서도 “당시 남북 교류 접촉이 너무 많다 보니 반드시 공식 채널을 통해 오고가지 않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판문점 연락사무소 등에도 싱가포르 쪽지 유무를 확인해줄 전통문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회의 기록도 당장 공개될 가능성이 낮다. 청와대 안보정책회의와 대통령 주재 회의 회의록은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적용 대상이다. 안보 관련 내용이라 최장 15년간 공개가 금지됐을 가능성이 높다. 송 전 장관이 기록을 토대로 진실을 주장하고 있지만 문 전 대표 측도 “우리도 기록이 있다”고 나선 상황이다.
글=문동성 기자 theMoon@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