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판사, 기술적으론 가능… 바람직하지는 않다”

입력 2016-10-17 20:59

“현실과 할리우드 영화는 구별해야 합니다. 인공지능도 전원을 뽑으면 작동할 수 없습니다.”(오렌 에치오니 소장)

“고도의 인공지능은 통제가 불가능할 수 있습니다. 확실한 안전장치가 필요합니다.”(로만 얌폴스키 교수)

인공지능 기술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은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까. 18일 대법원이 주최하는 ‘2016 국제법률 심포지엄’을 앞두고 17일 열린 사전 기자간담회에서 두 명의 석학이 난상토론을 벌였다. 두 사람은 인공지능은 인류의 ‘희망’과 ‘재앙’이 될 것이라는 정반대 관점을 내놓으며 날카롭게 부딪혔다.

글로벌 IT기업 마이크로소프트(MS)의 공동창업자 앨런이 설립한 미국 ‘앨런 인공지능 연구소’의 오렌 에치오니 박사는 “왜 사람들이 인공지능 기술을 두려워하는지 되묻고 싶다”며 “인공지능 기술은 연필과 같다. 아무리 날카로워도 혼자 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인공지능의 ‘위험성’을 경고해 온 미국 루이빌주립대 로만 얌폴스키 교수는 “인공지능을 단기적으로는 통제할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론 불가능하다”며 “그 시점이 되면 컴퓨터 과학자나 교수들도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른바 ‘알파고 판사’의 탄생에 대해 두 사람 모두 “기술적으로는 가능하다”고 예견했다. 하지만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입을 모았다. 얌폴스키 교수는 “인공지능이 부동산, 재산 등 민사 소송에서 판결을 내릴 수는 있을 것”이라면서도 “인간의 생사(生死)를 판단하는 부분에서 기계가 인간을 대신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에치오니 소장도 “판사는 판결에 앞서 사회적 상황에 대한 연민과 공감을 갖춰야 한다”며 “인공지능이 내리는 판결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두 사람은 ‘강 인공지능’(Strong AI)은 25년 안에 현실화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봤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이나 자동차 차선 변경 시스템은 ‘약 인공지능’(Weak AI)으로, 강 인공지능은 책이나 신문 기사를 스스로 읽고 그 내용을 이해해 질문에도 답변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말한다.

에치오니 소장은 “최근 전문가 설문조사에서 ‘강 인공지능의 탄생은 25년 내에는 어렵다’는 응답이 지배적이었다”며 “당분간 현실에 등장하진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얌폴스키 교수는 “강 인공지능이 초래할 문제점은 너무 복잡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관한 연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25년이든 50년이든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해외 법원과 법관은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심포지엄에 앞서 국민일보와 만난 네덜란드 법원의 도리 레일링 부장판사는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 프로그램은 전 세계가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며 “네덜란드에서도 관련 논의가 있었는데 ‘사실상 컴퓨터가 법관을 대체하긴 어렵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말했다.

레일링 부장판사는 “판사나 변호사들은 앞으로 인공지능을 이용해 더 나은 결과를 내놓아야 한다”며 “다만 판결에서 중요한 건 정확성보다 공평성이다. 공평성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인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네요. 인공지능 판사에게 판결을 받기 원하는지 말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현실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인공지능 판사 시대는) 이뤄지지 않을 겁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