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 회오리 ‘문재인 대세론’ 발목 잡나

입력 2016-10-18 00:03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17일 국회에서 열린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대북결재 요청사건 TF 회의’에서 송민순 전 장관의 회고록을 들어 보이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새누리당이 색깔론 공세에 앞장섰다”고 비판하는 모습. 이동희 기자



‘조기 대세론 굳히기’에 나섰던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송민순 회고록’ 논란에 발목이 잡히는 모양새다. 당 지도부는 물론 다른 야권 잠룡들도 적극 진화에 나섰지만 당내에선 “미숙한 대응에 스텝이 꼬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文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논란 한복판에 선 문 전 대표는 17일 회고록 사태 발생 이후 처음 입을 열었다. 그는 이날 인천의 한 기업 방문 현장에서 2007년 노무현정부의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기권’ 표결 경위 사실관계를 묻는 질문에 “당시를 잘 기억하는 분에게 물으라”고 답했다. 그러나 문 전 대표는 기업 방문 후 기자들과 만나 그 당시 일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그동안 그는 자신의 대변인 격인 김경수 의원과 SNS 등을 통해서만 입장을 밝혔다.

문 전 대표의 이 같은 입장은 여권과 ‘진실게임’ 공방을 재연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문 전 대표는 201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 논란이 이어지자 ‘10·4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라는 초강수를 뒀지만,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지난해 4월 고(故)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에 대한 노무현정부 특별사면 논란 때도 문 전 대표는 “사면은 법무부 업무”라고 발언해 여당과 진실게임을 벌였다. 이번엔 논란의 확산 분기점에서 강공 대신 ‘기억 안남’이라는 퇴로를 선택한 셈이다.

野 잠룡 지원 속 “스텝 꼬였다” 지적

더민주 추미애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비선 측근실세 비리를 덮기 위한 새누리당의) 난리법석이 도를 넘었다”며 “우리 당 대선 후보에 대해 허위사실로 비방하고 흠집 내기를 한다면 강력 대처하겠다”고 강조했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새누리당과 이명박·박근혜정부는 전임 정부의 외교 기밀문서까지 왜곡 조작해 대선 정국에 이용했다”며 “서로 다른 견해에 대해 내통을 운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구시대의 낡은 정치”라고 비판했다. 김부겸 의원도 “국기 문란은 문 전 대표가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 측근들이 저지르고 있다”며 “색깔론만 꺼내들면 국민이 보수 정치세력을 지지할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라고 일갈했다.

그러나 문 전 대표의 ‘이실직고’가 유력 대선주자로서 적절치 않은 대응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지도부 핵심 관계자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문 전 대표가 결정권한은 없었을 것”이라면서도 “현장에 있었던 청와대 핵심인사이자 앞으로 국정을 책임지겠다는 사람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면 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이겠느냐”고 반문했다. 한 더민주 의원도 “회고록 논란이 터지자마자 사실관계를 분명히 파악해 대응했어야 하는데 처음부터 스텝이 완전히 꼬였다”며 “NLL 대화록 때나 ‘성완종 특사’ 때는 너무 앞서 나가서 문제였는데, 이번엔 너무 빼버려 문제”라고 지적했다.

글=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 사진=이동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