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이 싸움의 단초는 무시다. 친구나 회사동료, 선후배끼리도 무시당한다 싶으면 사달이 난다. 부부간 싸움도 대부분 무시가 발단이 된다. 업신여겨 깔보는 무시 행위는 상대의 밑바닥 자존심을 건드려 상호 간 막말과 독설, 거친 행동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무시가 일상화되면 사회는 서로 물어뜯고 약자를 공격하는 동물 세계와 다름없이 피폐해진다.
국회에서 상임위나 청문회, 국정감사를 할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말이 ‘존경하는 ○○○ 의원님’이다. 증인으로 불려나온 장관 등 국정 당사자들은 물론 의원들 상호간에도 꼭 이 말을 먼저 한 뒤 발언을 하곤 한다. 공개토론이나 세미나, 회의 때도 ‘존경하는 ○○○님’이란 말을 많이 사용한다. 상대를 무시하지 않고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주장을 설득하기 위한 방편이다. 특히 상대를 반박하거나 공격하려면 더욱 이런 표현을 많이 쓴다. 발언에 앞서 품격을 지키고 스스로를 다지기 위한 측면도 있다.
요즘 동방예의지국을 자부하는 대한민국에서 ‘무시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상대를 무시하면서 정제되지 않은 막말과 독설이 횡행한다. 대통령부터 일반 서민까지 서로 인정하지 않고 승복하지 않는 일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절제와 품격으로 국민의 모범이 돼야 할 사회지도층에서 오히려 더 심각한 상황이다.
언제부턴가 박근혜 대통령과 관련해서는 ‘마이 웨이’나 ‘불통’ ‘고집’이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야당을 인정하지 않고 여론을 무시하고, 여권 내 비박(비박근혜)계 등 직언을 하는 그룹의 조언도 전혀 들으려 하지 않아서다. 박 대통령은 무시하고 싶은 상대의 반격이 예상되면 종종 공격적이고 거친 용어도 내뱉는다. 그러다 보니 일부 여권 내에서도, 야당은 물론 국민까지도 오히려 대통령에게 반발하는 풍조가 늘어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박 대통령 국정 지지율이 26%까지 내려간 것은 이를 방증한다. 일반 국민 4명 중 3명이 대통령을 무시하는 셈이다.
국회에서도 희한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거대 야당은 정부를 견제해 올바른 국정운영의 동반자가 되라는 유권자들의 기대를 저버린 채 대통령과 정부, 여당을 무시하기 일쑤다. 마치 정권을 잡은 것처럼 오만한 발언과 행동도 이어지고 있다. 여야 간 공격에서는 최소한의 품격을 유지했던 과거와 달리 동네 깡패집단이나 하는 언행까지도 나오고 있다. 동료 의원, 여성 의원은 물론 상대 당 대표를 향해서도 막말을 하는 등 대놓고 서로를 무시한다. 국내 의전 서열 2위인 국회의장을 겨냥해서도 모욕적인 말을 하고 공격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이렇게 국회가 스스로 품격을 잃어버리자 거꾸로 국회도 무시를 당하고 있다. 국정감사 증인이 의원을 향해 막말을 하거나 질의를 무시해버리고, 아예 국회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기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러니 국감이 제대로 이뤄질 리 만무하다. 국감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지만 벌써부터 사상 최악의 국감이란 평가가 나오고 있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최근 국감 현장을 바라본 한 방청객은 “한마디로 ‘개판’이더라”고 혀를 찼다.
정치권이 제 역할을 못하니 국민을 개돼지 취급하며 하대하는 공무원도 늘어나고 있다. 반대로 공무원을 인정하지 않고 공무를 무시하는 국민도 많아지고 있다. 회사는 노조를, 노조는 회사를 인정하지 않고 서로 불신하면서 파업은 늘고 경제는 멍들어간다. 일부 인터넷에서는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남성과 여성이 서로 상대를 무시하고 반감을 갖는 부끄러운 상황까지 표출되고 있다. 사회지도층부터 막말과 독설을 자제하고 서로 상대를 무시하지 않겠다는 캠페인이라도 벌였으면 좋겠다.
오종석 편집국 부국장 jsoh@kmib.co.kr
[돋을새김-오종석] ‘품격 대한민국’을 찾습니다
입력 2016-10-17 18: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