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이슈] ‘5중고’ 세계경제… 투자 빙하시대

입력 2016-10-17 18:42
지구촌 살림살이가 좀처럼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선진국들이 미래를 위한 투자까지 줄이고 있어 완만한 회복세마저 둔화될 조짐이다. 지난달 20일 벨기에 브뤼셀 유럽연합(EU) 본부 앞에서 미국·캐나다와 EU의 무역협정 체결에 반대하며 시민들이 행진하고 있다. 신화뉴시스


투자가 늘어야 고용이 늘어난다. 그래야 가계의 소득이 증가하고 소비가 늘어 다시 기업의 투자가 증가한다. 이른바 경제의 선순환 효과다.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1∼2012년 유로지역 재정위기를 극복한 세계경제가 글로벌 투자 부문에서 주춤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투자 지표가 둔화되기 시작하더니 올해는 주요국에서 마이너스로 전환됐다. 세계경제 회복세 드라이브에 강력한 적신호가 켜진 것이다.

17일 한국은행이 집계한 주요국 투자 증감률 현황을 보면, 연간 4∼5%대 증가율을 유지하던 미국의 민간투자는 올해 들어 마이너스로 전환했다. 1분기가 전기대비 -0.9%로 뒷걸음질 쳤고, 2분기 역시 -1.1%의 실적을 냈다. 재정위기 이후 빠른 속도로 회복했던 유로지역 투자도 올해 들어 분기별 증가폭이 0%대로 하락했다. 일본도 1분기 마이너스 투자 지표를 나타냈고, 중국도 전년 동기대비 투자 증가율이 두 자릿수에서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한은은 글로벌 투자 부진의 배경을 다섯 가지 키워드로 추출해 분석했다. 교역부진 불확실성 저유가 고령화 과잉설비 등이다. 이 가운데 그나마 타개될 가능성이 높은 쪽은 저유가다. 신규투자를 이끌어낼 거의 유일한 지표로 국제유가의 완만한 상승세가 꼽히고 있다.

배럴당 50달러로 저유가 탈출 발판

저유가는 한국과 같은 신흥국에게 재앙이다. 석유정제 관련 산업이 수출 비중이 높은데, 당장 지표가 나빠진다. 정유 화학 조선 해운업이 겪는 위기의 근원이 저유가였다. 건설 및 해외 플랜트 부문도 중동 수주절벽에 시달렸고, 중동펀드의 금융권 투자도 축소일로 상황이었다.

반전은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지난달 28일 알제리에서 열린 비공식 회의를 통해 “11월 정기 총회에서 OPEC의 원유 생산 한도를 하루평균 3250만∼3300만 배럴로 설정한다”고 합의한 데서 시작될 전망이다. 회원국간 원유 감산 합의가 매끄럽게 이뤄지고, 러시아 및 비OPEC의 동참 여부가 남아있지만, 이에 앞서 더 이상의 저유가는 없다는 분석기구들의 전망치가 나온 바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은 OPEC 감산결의에 3주 앞선 지난달 7일 2017년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51.6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하면서 올해 30달러대 까지 떨어졌던 유가의 반등 가능성을 제시했다. 캠브리지에너지연구소(CERA)도 배럴당 51.8달러를 기록할 것이란 내년도 전망치를 내놓았고, 옥스퍼드경제전망(OEF)도 50달러로 예측했다. 한은은 “원유 감산합의 이행 여부가 유가 향방을 좌우한다”는 전제를 말하면서도 “유가가 완만히 상승하면서 에너지부문 투자 회복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침체 부르는 고령화와 과잉설비

고령화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경제의 발목을 잡는 고정 변수다. 한국도 내년부터 생산가능인구의 첫 감소가 예상되고 있는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전체로는 2000년대 후반 생산가능인구비중이 66.8%의 정점을 찍은 후 계속 악화 일로다. 생산가능 인구가 줄어드니, 노인부양률은 당연히 높아진다. OECD에 따르면 1990년 17.6%였던 노인부양률은 2014년 24.2%까지 늘었다. OECD 국가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금지출 비중도 2030년엔 10.6%로 두자리수를 넘어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고령화에 따른 재정지출이 늘어나니, 투자촉진 재원마련이 더 어려진다는 의미다.

철강 조선 해운업의 과잉설비도 신규 투자를 막는 요소로 꼽혔다. 철강의 경우 OECD 회원국 2015년 기준 생산능력은 25억t에 육박하는데, 세계적 수요는 15억t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2016년 들어서는 미국과 일본에서 제조업 가동률이 1∼3포인트씩 더 떨어지고 있다. 한은은 “특히 중국의 경우 민간투자를 중심으로 고정자산투자가 급격히 둔화될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중국의 경우 2015년말 기준으로 조강 석탄 시멘트 평판유리 산업에서 가동률이 75%를 넘지 못하는 현상이 관측됐다. 생산설비를 축소하지 않는 한 개선되지 않는다.

3% 성장세에 불확실성 여전

교역부진과 불확실성도 세계적 투자회복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다. 2017년 세계경제는 3% 이상의 완만한 성장세가 예상되지만,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의 2000∼2007년 평균 4.5%의 성적표에는 못 미치는 수준이다. 성장세는 주춤한데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정책금리 인상과 보호무역주의 공약이 강화된 미국 대선, 중국의 성장구조 전환 등의 불확실성 요인들은 더 커지고 있다.

특히 세계경제를 견인해 온 미국은 2009년 6월 저점을 찍은 뒤 88개월 연속 경기 확장세를 이어어고 있어 향후 경기둔화 국면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대두된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는 부유층 증세 대 법인세 감세로 맞서고 있으며, 오바마케어를 두고도 확대와 폐지로 대립 각을 세우는 중이다. 금융개혁안인 도드 프랭크법안에 대해서도 클린턴의 유지와 트럼프의 폐지 입장으로 나뉘어 있고, 무역 분야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TP) 개정과 반대로 각각 목소리를 달리한다. 경제정책 방향에 대한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의미다.

영국도 내년 3월말까지 유럽연합(EU)에 탈퇴 의사를 전달하고 EU집행위원회와 탈퇴 협상을 진행할 예정인데, 스코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를 배제하는 등 불확실성이 노출되며 유로지역 투자 심리 위축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 4일 테레사 메이 총리의 브렉시트 협상 기본입장 발표 이후 파운드화 환율이 31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큰 폭의 출렁임을 보이기도 했다.

글로벌 투자 부진 속 우리의 대응책은

한은은 결론으로 “경기회복, 유가의 완만한 상승 등으로 글로벌 투자는 2017년 들어 증가세가 다소나마 회복되겠지만, 그 수준은 금융위기 이전에 비해 저조할 전망”이라고 압축했다. 한국은 소규모 개방경제에 수출 의존도가 절대적이어서 세계경제 흐름을 많이 탈 수 밖에 없다. 글로벌 투자 부진이 국내 투자 부진으로 이어지는 구조이기 때문에, 장기화되어 성장 잠재력을 훼손하지 않도록 투자활성화를 위한 다각적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한은은 먼저 “기업구조조정을 신속히 추진해 대내적 불확실 유발 요인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민간부문이 투자 방향을 가름하기 어려우므로 공공투자의 선도적 역할이 중요하다”고 했다. 인공지능(AI) 로봇 분야에서의 공공투자, 도로 항만 등 SOC 위주 투자에서 안전 보건 환경 등으로의 투자 확대, 글로벌 경기부진을 극복하려는 조선업종을 위한 노후선박 교체 및 군함 등의 선발주 등을 제안했다.

글=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