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연희단거리패는 2006년 창단 20주년을 맞아 서울 종로구 대학로 혜화로터리 인근에 80석 규모의 소극장 게릴라극장을 마련했다. 혜화로터리 부근이 ‘OFF 대학로’로 불리며 소극장 연극의 새로운 중심이 된 데는 게릴라극장의 존재감이 크다. 게릴라극장은 연희단거리패의 전용극장이지만 여러 기획공연을 통해 다른 극단에도 문호를 열었다. 특히 대관료를 받지 않고 수익을 절반 나누는 파격적인 방식으로 재능있는 젊은 극단들을 발굴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런데, 연희단거리패 창단 30주년인 올해 게릴라극장이 매물로 나왔다. 개관 10주년만이다. 극단의 재정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게릴라극장에선 올 연말까지만 공연이 올라간다. 극단을 이끄는 극작가 겸 연출가 이윤택 예술감독이 소위 ‘블랙리스트’에 오른 탓인지 게릴라극장에 대한 공공 지원이 끊겼고, 극단은 늘어나는 적자 폭을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게릴라극장과 함께 강북구 수유리에 있는 단원들의 서울 숙소도 내놓은 상태다.
지난 2월 극단 창단 30주년 기념간담회에서 이윤택 예술감독은 “게릴라극장을 공동으로 운영할 뜻있는 사람을 찾는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소극장 운영의 부담을 함께 짊어질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연희단거리패는 소극장 매각 이후에도 연극을 계속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을 마련했다. 오는 28일 성균관대 인근에 문을 여는 ‘30스튜디오’다. 연극 연습은 물론 서울과 극단 본거지인 경남 김해시 도요리를 오가는 단원들의 숙식까지 겸할 수 있는 곳으로 70석 정도의 객석이 들어선다. 김소희 연희단거리패 대표는 “서울 숙소의 매각이 예상보다 늦어지는 상황에서 게릴라극장 역시 매물로 내놓긴 했지만 제대로 진행이 안돼 고민이다”고 말했다.
한편 30스튜디오의 개막작은 일본 극작가 겸 연출가 히라타 오리자와 이윤택이 잇따라 올리는 ‘서울시민’과 ‘서울시민 1919’다. 히라타는 자신이 이끄는 극단 세이넨단과 함께 28∼31일 두 작품을 연달아 공연한다. 그리고 이윤택은 연희단거리패와 함께 ‘서울시민 1919’를 11월 1∼6일, 11∼13일, 18∼20일 공연한다.
연극 ‘과학하는 마음’ 시리즈 등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히라타는 구어체 대화로 일상과 내면을 강조한 ‘조용한 연극’ 붐을 일으켰다. 1989년 초연된 ‘서울시민’은 히라타의 연극세계를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1909년 일본 병합 직전 서울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일본인 가족의 하루를 그렸다.
운명에 순응하는 ‘악의 없는 시민의 죄’를 지적한 히라타의 문제의식은 3·1운동이 일어난 날을 다룬 ‘서울시민 1919’(2000년 초연), 공황기를 다룬 ‘서울시민 쇼와망향편’(2006년 초연) 그리고 태평양전쟁 직전을 그린 ‘서울시민 1939-연애이중주’(2011년 초연)로 이어졌다.
한국에서는 히라타의 서울시민 연작 가운데 ‘서울시민’이 1993년 극단 세이넨단의 공연으로 선보인 바 있고, ‘서울시민 1919’가 2003년 극단 연희단거리패의 공연으로 소개됐다. 이번 30스튜디오에서 두 극단은 모두 똑같은 무대를 사용한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소극장 연극 중심 ‘게릴라극장’ 매각한다
입력 2016-10-17 18:23 수정 2016-10-17 2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