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전형적 흰색 전시장 벗어나 ‘群島형 전시장’ 지향했지만…

입력 2016-10-17 18:22
옵신의 관객참여형 작품 ‘옵신 5: 보이드’. 4호까지 나온 잡지 ‘옵신’의 5호를 전시 형태로 보여준다는 개념이다. 의자에 앉아 복도 바닥에 남아 있는 경성제대 시절 건축물의 흔적(검은 직사각형)을 응시하자는 취지인데, 이 흔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했다.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서울 종로구 삼청로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뛰어난 접근성 덕분에 주말이면 많은 이들이 찾는 도심 속 문화 쉼터로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설계자인 민현준 건축가의 기본 콘셉트가 ‘섬과 바다’라는 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섬’은 전시장 같은 분명한 기능을 가진 공간을 뜻하는 반면, ‘바다’는 특정 기능이 없이 비어 있는 공간을 은유한다. ‘화이트 큐브’(전형적인 입방체 흰색 전시장)를 벗어나 복도, 마당, 움푹 들어간 공간(Sunken)도 적극 끌어들이는 ‘군도(群島)형 전시장’을 지향했던 것이다.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는 ‘보이드(void·텅 빈)’전은 그 바다를 살려보자는 취지라고 전시 기획자는 16일 밝혔다. 내달 13일의 개관 3주년을 맞아 서울관의 건축적 특성에 주목해보자는 기획 의도다. 그러나 실제 전시가 이뤄진 장소와 의도의 미스매치, 주제의 분산, 난이도 조절 실패 등으로 인해 기획 의도를 제대로 전해 받기는 힘들 듯하다.

우선 미술가 장민승과 작곡가 정재일이 협업한 ‘밝은 방’, 건축을 전공한 미디어아티스트 김희천의 영상설치 작업 ‘요람에서’, 건축가 최춘웅의 ‘실종된 X를 찾습니다’ 등 전시의 5분의 3을 일반 전시실에서 풀어내고 있다.

관객의 주목을 더 끌어야 할 복도나 통로의 전시는 왜소하다. ‘오픈하우스 서울’이 서울관 주변에 있는 공원, 궁 같은 여백의 공간의 변천사를 그래픽화한 작업이 복도 귀퉁이를 빌린 듯 진열되고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옵신’(서현석, 김성희, 슬기와 민)의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 작품이다. 오프라인 잡지 옵신(Obscene)를 발간하고 있는 이들은 지면이 아닌 버려진 공간 20곳을 페이지 삼아 ‘보이드’라는 주제를 펼쳤다. 이를테면 복도 바닥에 있는 경성제국대 부속병원 건축물의 흔적을 응시하게 하거나, 계단 밑에 설치된 작품을 음악을 들으며 보게 하거나, 유리에 붙은 한 줄 ‘하이쿠’(일본 고유의 짧은시)를 읽게 하는 것이다. ‘옵신의 작품 일부’라는 안내문은 글씨가 너무 작고, 함께 놓인 작은 의자는 관객용이 아니라 안내원이 앉는 의자처럼 묻혀 있다.

옵신 관계자는 “미술관은 디즈니랜드가 아니다. 생각하고 사색하는 공간이어야 하는데, 시끄럽고 활기찬 곳이어야 한다는 오해가 있었다. 그걸 풀고자 하는 것이 작품 의도”라고 말했다.

하지만 관객의 눈길을 묶어두기 위한 정보 제공이 좀더 있어야 했다. 관람객이 외면하면 작가의 의도가 심오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