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없으면 불안 ‘금단현상’… 스마트폰 끊기가 금연보다 힘들다
입력 2016-10-17 04:18
직장인 박모(29·여)씨는 오른손으로 컴퓨터 작업을 하면서 왼손으로 스마트폰을 계속 두드린다. 동료와 웃고 떠들 때에도 손가락은 쉴 새 없이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리고 있다. 스마트폰을 터치하기만 하면 되는 게임에 푹 빠져서다.
박씨는 몇 번 게임 앱을 지워보기도 했다. 하지만 몇 시간도 버티지 못해 다시 앱을 깔았다. 직장 동료들도 ‘스마트폰 금단 증상이 담배보다 심하다’고 말할 정도다. 박씨는 “가끔 멍하니 스마트폰만 두드릴 때도 있다”며 “틈날 때마다 게임을 하다 보니 습관이 됐다”고 말했다.
‘스마트폰 중독’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성인 398만명이 스마트폰에 ‘과잉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인 중독자의 경우 대부분 ‘잠재적 위험군’일 정도다. 소통할 창구를 찾지 못해 스마트폰에 의존하게 되고, 주로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 빠져든다. 게임에 돈을 쏟아붓기도 한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은 전국의 만 20세 이상 성인 가운데 스마트폰 중독자가 지난해 기준 397만9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16일 밝혔다. 2013년 188만1000명에서 2년 만에 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같은 기간 청소년 스마트폰 중독자의 증가세(111만7000명→170만4000명)보다 가파르다. 정보화진흥원은 만 3∼59세 스마트폰 사용자 중 1만8500명을 표본조사해 전체 숫자를 추계한다.
스마트폰 중독(과의존)은 스마트폰을 과도하게 사용해 금단과 내성을 갖게 된 뒤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기는 상태다. 금단에 이르면 스마트폰이 없을 때 불안해진다. 내성이 생기면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기 힘들다. 정보화진흥원은 일상생활 장애 수준에 따라 중독 고위험군, 잠재적 위험군, 일반군으로 분류한다.
스마트폰에 중독된 직장인들은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고 동료들과 어울리지 않다가 다시 스마트폰에 기대는 일을 되풀이한다. 스마트폰 중독을 상담해주는 정보화진흥원 산하 ‘스마트 쉼 센터’를 찾은 직장인 허모(32)씨는 대표적 사례다. 그에게 회사생활의 유일한 낙은 ‘SNS’다. 허씨는 직장생활이 힘들수록 SNS에 의존했다. 상사에게 여러 차례 지적을 받아도 스마트폰을 끊을 수 없었다. 아예 가방에서 스마트폰을 꺼내지 않겠다고 다짐하기도 했지만 헛수고였다. 스마트 쉼 센터의 한 상담사는 “직장인 중독자들은 일에 집중하지 못해 받는 스트레스에 승진이나 대인관계 스트레스가 겹칠 때가 많다”며 “다리를 떠는 행위처럼 불안감 때문에 스마트폰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작용이 커지면서 최근 ‘디지털 디톡스’(스마트 기기 사용을 중단하고 심신을 치유하는 일)에 나서는 사람도 늘고 있다. 스마트 쉼 센터의 상담 건수는 2013년 3만7840건에서 지난해 4만5822건으로 증가했다. 상담받는 사람의 절반 정도는 직장인이다. 시장조사 전문기업인 마크로밀 엠브레인이 지난 6월 전국 19∼59세 남녀 1000명을 조사한 결과 69.3%가 디지털 디톡스에 공감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색안경을 끼고 직장인 중독자를 바라볼 게 아니라 노동환경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스마트폰 중독 문제를 다룬 책 ‘중독은 없다’를 펴낸 사회학자 윤명희씨는 “일과 생활의 균형이 맞지 않으면 스마트폰으로 SNS와 게임 같은 단순한 것에 빠져들게 된다”며 “스마트폰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쉴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글=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