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de&deep] 소득 불평등 심해지는데… “나아지는 중” 헛짚는 정부

입력 2016-10-17 00:09



공식 통계로 드러나지 않는 부(富)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지니계수를 근거로 현 정부 들어 소득 불평등이 완화되고 있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중산층의 개념을 정립하고 소득 재분배를 통해 중산층을 키우겠다는 정부의 정책 의지는 퇴색한 지 오래됐다.

“소득 불평등 개선 중” 우기는 정부

이번 국정감사에서 여야는 법인세 인상 여부를 놓고 첨예하고 대립했다. 그 밑바탕에는 소득 불평등에 대한 인식 차이가 존재한다. 정부와 여당은 소득 불평등이 현 정부 들어 개선되고 있다는 입장이고, 야당은 악화되는 소득 불평등을 법인세 인상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소득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개선된 점을 강조하고 있다. 지니계수는 0부터 1 사이의 값으로 1에 가까울수록 소득 분배가 불평등하다는 의미다. 통계청 가계동향 조사에 따르면 한국 전체 가구의 가처분소득(세금, 연금, 대출이자 등을 제외한 실제 소득) 지니계수는 지난해 0.295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었던 2008년(0.314) 이후 가장 낮았다. 정부는 지난 7월에는 도시 2인 가구 지니계수를 정권별로 비교해볼 때 현 정부의 지니계수는 노무현·이명박정부보다 개선됐다고 밝혔다.

현 정부 들어 심화되는 부의 집중

정부가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지니계수는 근본적으로 자산을 포함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다. 고소득층이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을 통해 얻는 소득이 누락돼 있는 것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부동산, 주식 등을 포함한 한국의 순자산 지니계수는 0.601로 치솟는다. 또 지니계수 산출을 위한 조사 가구 표본 수는 전체의 0.07%에 불과하고 이 중 4분의 1은 조사에 응하지 않는다. 감사원마저 지난 5월 지니계수 통계 산출의 정확성과 일관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할 정도다.

부의 집중도 추이를 살피려면 지니계수보다 고소득층의 세금 통계를 보면 더 정확히 알 수 있다. 표본이 100%로 정확할 뿐 아니라 소득 증가 추세가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16일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의원이 국세청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현 정부 들어 상위 10% 고소득층은 소득이 늘고 부의 이전 부담은 줄었다. 최근 4년간 소득 상위 10%가 이자·배당소득을 90% 이상 차지하는 추세가 지속되는 것은 물론 근로·배당·종합부동산 보유 소득 중 상위 10%가 차지하는 비중도 현 정부 들어 늘었다. 이에 비해 상속·증여세 부담은 크게 감소했다. 상위 10%의 상속세와 증여세 실효세율은 최근 3년간 감소했다. 상속·증여세율이 명목상 최대 50%로 정해져 있지만 각종 공제 항목이 많아 50%는 무의미한 숫자가 된 지 오래다.

정부, 소득 재분배 정책 의지 결여

소득 불평등 심화는 세계적 추세다. 각국 정부는 조세와 재정 정책을 동원해 소득 재분배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소득 재분배 정책 의지는 갈수록 퇴보하고 있다. 정권 초 중산층 70% 달성을 내걸고 중산층 개념을 재정립하겠다고 공언했지만 흐지부지됐다.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는 취임 후 가계소득 증대를 정책 1순위로 강조했지만 가계소득증대세제 등 각종 대책은 사실상 실패했다. 유일호 부총리 취임 이후에는 소득 불평등 완화 정책은 아예 뒷전으로 밀려났다.

실제 한국의 조세를 통한 소득 재분배 효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3분의 1밖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OECD 회원국은 조세 제도를 통해 지니계수가 평균 34.5% 개선됐는데 비해 한국은 그 효과가 9.2%에 불과했다.

정부는 앞으로 소득 불평등이 자연스럽게 개선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OECD 회원국에 비해 조세와 재정정책의 재분배 효과가 크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앞으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연금제도가 성숙하면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대 류근관 경제학과 교수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0년 동안 우리 사회의 소득 불평등이 심해지고 있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정부가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희미해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말했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