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차단 기준조차 없어… ‘위험한 공모’ 독버섯처럼 번진다

입력 2016-10-17 04:10



‘장난 사절입니다. 같이 하실 분 구합니다. 카톡 주세여.’ 지난 8월 18일 트위터에 ‘동반 자살’을 제목으로 한 글이 올라왔다. 곧바로 이 글에 동조하거나 구체적인 수단까지 언급하는 10여개의 트윗(댓글)이 달렸다. 보건복지부 중앙자살예방센터가 이를 찾아내 트위터 측에 삭제를 요청한 건 지난달 8일이었다. 22일 동안 자칫 ‘집단 자살’로 이어질 수 있는 유해 정보가 사이버 공간을 활보한 것이다. 중앙자살예방센터 관계자는 16일 “파트타임 직원 1명과 자원봉사자 10여명이 인터넷 사이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모두 모니터링하자니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앙자살예방센터는 지난달 8일 구글 플러스(+)에서 자살을 희망하거나 계획 중인 이들을 가입자로 하는 커뮤니티를 찾아냈다. 그런데 이 커뮤니티는 지난 7월 중앙자살예방센터가 경찰청과 함께 연 ‘자살 유해 정보 신고대회’에서 적발됐던 커뮤니티였다. 구글 측에 요청해 차단됐는데 어느 순간 다시 나타난 것이다. 다시 구글에 차단 요청했지만 조치는 취해지지 않고 있다.

인터넷과 SNS에서 별다른 죄의식 없이 자살을 조장하거나 방조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하지만 자살 유해 정보를 즉각 차단하거나 자살 고위험군을 구제하는 ‘위기 대응’은 쉽지 않다. 현행법상 자살 유해 정보 유포자나 사이트 운영자를 처벌하는 데 어려움도 따른다.

트위터 등 해외 사업자 ‘소극적’

네이버와 다음 등 국내 포털업체들은 ‘자살 금칙어’를 선정하고, 자살 키워드를 검색하면 자살 예방상담 페이지 및 전화번호 안내로 연결되도록 하고 있다. 네이버는 18개, 다음은 10개의 자살 관련 단어를 지정해 게시물 등록을 금지한다. 네이버는 자살 유해 정보 신고 핫라인까지 운영하고 있다.

반면 트위터, 구글 플러스 등 해외에 서버를 둔 인터넷·SNS 사업자는 자살 유해 정보 차단에 소극적이다. 이들은 개인정보 보호, 표현의 자유 침해 등을 이유로 내세운다. 트위터의 경우 음란물, 마약 관련 유해 정보는 90% 이상 삭제 처리하고 있지만 자살 관련 유해 정보는 삭제 처리나 협의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경찰청과 협약하고 자살 위험자 정보 제공 등을 업체에 요청하는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에는 국내 11개 업체만 가입돼 있다. 해외 사업자들은 참여하지 않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관계자는 “마약, 음란물에는 글로벌 컨센서스(세계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만 자살은 유해성 기준이 모호하고, 세계적 공감대가 이뤄지지 않아 트위터에 차단 조치 등 협조를 구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고육지책으로 SKT, KT 등 지역망사업자(ISP)에 트위터 등에 오른 자살 유해 정보 차단을 요청하기도 한다”며 “이런 조치는 원래 정보를 삭제하지 않은 채 이뤄지는 차단이라 우회 접속 등을 통한 정보 재생산을 막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그나마 페이스북은 지난 6월부터 중앙자살예방센터와 업무 협약을 맺고 자체 개발한 ‘자살방지 툴’을 적용하는 등 자구노력을 하고 있다.

유해 정보 가려내는 ‘기준’조차 없어

자살 유해 정보 모니터링은 중앙자살예방센터와 대학생 등 자원봉사자로 구성된 사이버 명예경찰(누리캅스)이 주로 맡는다. 모니터링 결과는 방통심의위에 전달돼 유해성 심의를 거친 뒤 삭제·차단 조치가 이뤄진다. 하지만 자살 유해 정보를 판단하는 ‘통일된 기준’이나 ‘정의’ 자체가 없다. 이러다보니 모니터링 기관과 인터넷·SNS 사업자별로 기준도 다르고, 자연스럽게 ‘사각지대’가 생길 수밖에 없다.

여기에다 인터넷·SNS 사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도 없다. 때문에 자살 유해 정보를 발견했을 때 대처하는 방식이 사업자·담당자별로 제각각이다. 대처가 미숙한 특정 매체에 자살 유해 정보가 집중되는 일도 벌어진다. 중앙자살예방센터 신은정 부센터장은 “자살 유해 정보 차단의 사각지대를 없애고 위험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통일된 ‘자살 유해 정보 가이드라인’ 제정이 시급하다”며 “동시에 모니터링 신고 인력 확대와 사업자들에 대한 교육 등도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게시자·운영자 처벌’ 필요

전문가들은 더 강력한 ‘보호막’이 필요하다고 본다. 자살 유해 정보를 유포했을 때 실제적인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자살 사이트 운영자나 자살 유해 정보 게시물을 올린 사람은 형법 252조 2항에 따라 자살방조로 처벌할 수 있다. 다만 유해 정보 때문에 자살했다는 구체적인 증거 확보가 어려워 처벌받은 사례는 거의 없다.

신 부센터장은 “자살 유해 정보의 일시적 삭제·차단으로는 유해 정보 확대 재생산을 막기 힘들다”며 “형법 적용이 어렵다면 정보통신망이용법으로 처벌받을 수 있는 판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보통신망이용법 44조 7항(불법 정보의 유통 금지 등)에 ‘자살’ 관련 조항을 새로 넣거나, 9항 ‘그밖에 범죄 목적이거나 교사 또는 방조하는 내용의 정보’를 전향적으로 해석하면 된다는 설명이다. 복지부는 현재 자살예방법에 관련 처벌 조항 신설을 검토하고 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