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23일 아침, 출근시간이 다 됐는데 A씨가 일어나지 않았다. A씨는 서울 여의도의 한 시중은행 금융센터장으로 근무했다. 언제나 오전 8시 전에 출근하던 그였다. 가족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구급대가 A씨를 병원으로 옮겼지만 그는 다시 눈을 뜨지 못했다. 만 49세. 입사 동기보다 줄곧 승진이 빨랐던 그는 그렇게 실적 압박과 진급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했다.
A씨가 센터장으로 근무한 점포는 직원만 29명이었다. 다른 은행뿐 아니라 같은 은행 점포끼리도 경쟁이 치열했다. A씨는 업무 실적이 탁월했다. 새로 부임한 금융센터에서도 5∼8위에 머물던 점포 평가 순위를 2등으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A씨의 삶은 나날이 피폐해졌다. 하루 11시간 이상 일하며 퇴근 후에도 고객 관리를 위해 술자리 등을 가졌다. 실적 압박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려 원형 탈모증도 생겼다. 주변에 “가슴 쪽이 답답하다”며 괴로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2014년 초 있었던 회의에서 “올해 어떻게 먹고살지”라고 토로하던 A씨는 다음날 회식에서 승진이 누락된 직원들에게 “내 노력이 부족한 탓”이라고 자책했다. 그게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A씨 유족은 업무상 재해라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를 신청했다가 거부당하자 소송을 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부장판사 강석규)는 “업무상 재해가 맞다”며 원고승소 판결했다고 16일 밝혔다. 재판부는 “A씨는 업무 실적에 대한 과도한 부담감 등으로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가 누적됐고, 이것이 사망에 이르게 한 주요 원인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실적·승진 압박’ 은행원 사망, 업무상 재해 인정
입력 2016-10-16 1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