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출근하는 남자와 등교하는 아이를 보내 놓고. 이런저런 집안일을 하고, 강아지를 산책시키고, 틈틈이 SNS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 보면 그 하루의 첫 밥도 먹지 않고 오후 세 시가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누가 재촉하는 바쁜 일도 없고, 꼭 해야 할 체크리스트도 없는데 왜 끼니도 잊을 만큼 바빴던 건지. 내가 보낸 시간이지만 늘 미스터리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나의 시간에도 적용되는 것일까? 요즘같이 성과도 목표도 지향도 없는 하루하루를 보낼 때면, 내가 바라던 삶은 바로 이런 것이었는데 왜 이상하게 밥을 먹어도 포만감을 느끼지 못할까?
출근하자마자 미국과 일본에서 온 팩스를 확인하고, 오늘 할 일을 포스트잇에 적어놓고 빨간 볼펜으로 하나씩 그어가며 일하다가 문득 시계를 보면 12시. 점심은 뭘 먹을까 잠시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학교에서 어떤 시간이 제일 좋으냐고 물어보면 점심시간이요, 라고 명료하게 대답하는 아이의 심정이 되어. 열심히 일한 나에게 가장 맛있는 것을 보상으로 주자는 마음으로. 그러나 결국 그저께도 먹었던 김치찌개를 잘하는 집을 찾아간다. 점심을 먹고, 해야 할 일들을 처리하다 보면 점심에 먹은 김치찌개 백반은 벌써 내려가고 퇴근 시간이 되어 있다. 하지만 오늘의 할 일 리스트에는 처리하지 못한 일들이 남아 있기 때문에 못다 한 일을 처리하다 굶주린 좀비가 되어 퇴근하는 것이다. 그런 삶을 살 때의 나는, 성과도 목표도 지향도 없이 하루하루 개와 산책하며 보내다 점심시간을 놓치는 삶에 대해서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
할 일 없이 시간을 보내든,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로 초 단위로 쪼개어 일을 처리하며 보내든, 때가 되면 찾아오는 허기와 그 허기에 부응하듯 위장에 밥을 넣어주었을 때의 포만감은 너무 정직하다. 대부분의 삶은 그 ‘정직한 포만감’을 느끼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상대의 ‘허기’를 이용해 끝도 없는 자신의 포만감을 채우려는 자들도 있어 배고픔을 숨기고 싶어 하고, 그 허기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글=유형진(시인), 삽화=공희정 기자
[살며 사랑하며-유형진] “밥은 먹고 다니니?”
입력 2016-10-16 18: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