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함께하는 사람들 얘기 들려준다… 민중미술가 민정기 9년 만에 개인전

입력 2016-10-16 18:33
민정기 화백이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현대적 시선으로 그린 ‘유(遊) 몽유도원도’. 금호미술관 제공
1980년대 남북 상황을 판화로 표현한 ‘한씨연대기’. 금호미술관 제공
1980년대 ‘현실과 발언’ 모임의 일원으로 민중미술을 대표했던 민정기(67) 화백. 이른바 ‘이발소 그림’을 끌어들여 사회성 짙은 작품으로 재해석한 민 화백은 2000년대 이후 역사적인 풍경화에 몰두하고 있다. 풍경화이기는 한데 분단의 아픔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작품이다. 다만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 얘기를 친근한 화풍으로 들려주고 있다.

그가 2007년 이중섭미술상 수상전 이후 9년 만에 개인전을 연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 금호미술관 7개 전시장에 ‘잊혀진 경물을 찾아서’라는 타이틀로 80여점을 펼쳤다. 도시학자 최종현씨와 답사를 통해 보고 느낀 풍경을 캔버스에 옮겼다. ‘대동여지도’를 그린 고산자 김정호의 심정으로 동행한 두 사람의 발길은 분단 이후 시간이 멈춘 듯한 임진나루에서 시작해 홍지문과 홍제동을 지나 경복궁에 이르렀다.

지하 1층은 분단의 현실을 상기시키는 작품으로 구성됐다. 임진강에 닿을 수 없도록 굳게 닫힌 철문과 군사구조물을 그린 ‘임진리 나루터’, 지금은 사라진 관광 숙소를 되살린 ‘임진리 도솔원’, 가로 폭이 4.8m에 달하는 ‘임진리 나루터 정경’이 임진나루 주변의 어제와 오늘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안쪽에는 ‘한씨연대기’(1984) ‘숲에서’(1986) ‘숲을 향한 문’(1986) ‘세수’(1987) ‘일터를 찾아서’(1983) ‘택시’(1985) 등 당시 정치적인 상황과 일상을 담은 판화 55점이 전시된다. 그의 판화작품을 한꺼번에 모아 전시하기는 처음이다. 1980∼90년대 사회 전반에 깔린 어두운 정서는 여전히 가로막혀있는 우리의 분단 현실을 상기시킨다.

1층과 2층은 임진나루에서 물길을 따라 서울로 걸어오면서 만나는 ‘개발과 전통이 혼재하는 풍경’을 담은 그림이 걸렸다. 홍제동에서 창의문으로 가는 길의 정경을 붓질한 ‘북악 옛길’,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현대적 시선으로 그린 ‘유(遊) 몽유도원도’, 고가도로 아래에 초라하게 자리한 ‘옥천암 백불’ 등이 옛것과 새것의 어색한 교유를 보여준다.

지난 13일 전시장에서 만난 민 화백은 “인간이 터를 잡아 사는 기운을 느끼려고 애썼고, 땅과 인간이 어울려 사는 모습을 담아냈다”고 설명했다. 색채가 더욱 화사해졌다. 그는 “나이를 먹으니 분홍색이 좋아진다”고 했다. 그렇게 그린 지금의 세상이 살만한 곳이라는 얘기냐는 질문에 그는 “평가는 나중 세대의 몫”이라며 답을 유보했다. 11월 13일까지(02-720-5114).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