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림트를 능가한 요절 천재화가 삶 생생하게 살렸다

입력 2016-10-16 18:35
에곤 실레의 삶을 형상화한 소설로 전업작가로의 출사표를 던진 임순만 작가. 그는 13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쓰고 있거나 구상 중인 중편이 4편 정도”라며 “앞으로 소설가의 길을 걷겠다”고 말했다. 이병주 기자
에곤 실레 작 ‘갈색 배경의 자화상’
에곤 실레(1890∼1918). 20세기 전환기를 빛냈던 오스트리아 표현주의 화가. ‘빈 분리파’의 창설자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의 사랑을 받았으나 그늘을 박차고 나와 기형적으로 왜곡된 인체, 스산한 풍경 등을 통해 죽음에 대한 공포, 내밀한 관능적 욕망, 불안이나 두려움 같은 실존적 고통을 표현했던 화가. 그러나 사후 급격히 잊혀진 인물.

불행한 천재 화가 에곤 실레가 우리 앞으로 걸어왔다. 사후 100주년을 앞둔 시점에서 소설 ‘에곤 실레 백년간의 잠’(문학의문학)으로 그를 환생시킨 이는 국민일보 편집인 출신 임순만(62)씨다. 정년퇴직 후 전업 작가로 출사표를 던진 첫 작품 주인공이 왜 에곤 실레일까.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작가를 만났다. 캐주얼한 청바지 차림에서 문청 시절의 흔적이 읽힌다.

“에곤 실레의 그림을 보면 그냥 마음이 저미었습니다. 왜 아플까. 그 물음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었습니다.”

문장이 좋으면 취재엔 게으르기 십상이다. 하지만 문학전문기자로 뛰던 시절, 그는 천성 같은 부지런함까지 더 해 장안의 지가를 올렸다. 이번 소설을 위해 오스트리아를 세 차례 찾아 구석구석 누볐고, 박사논문을 쓰듯 외국 학술자료를 훑었다.

소설은 액자형식이다. 에곤 실레를 연구하는 미술사학자 제인의 삶과 에곤 실레의 삶이 병렬된다. 도처에 복선이 깔린 중층적 구조는 후반부로 갈수록 재미를 배가시키는 요소가 된다.

이야기는 뉴욕에 거주하는 제인이 에곤 실레 100주기 기념 국제심포지엄에 참석하러 빈에 도착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8살 때 미국 구겐하임미술관에서 ‘갈색 배경의 자화상’을 본 후 운명처럼 에곤 실레를 연구하게 된 학자다. 점차 그가 한국계 입양아이며, 불의의 사고로 남편과 사별하는 등 양파 껍질 벗겨지듯 그의 상처가 드러난다.

제인의 불우는 에곤 실레의 삶과 오버랩 되며 풍부한 무늬를 직조한다. 시골 툴른에서 철도원 아들로 태어난 에곤 실레. 모두가 선망하는 빈 미술아카데미에 최연소 합격할 정도로 두각을 보였으나 인습적 교육이 싫다며 박차고 나왔다.

“나는 클림트처럼 화려한 부르주아 초상을 그리고 싶지 않았다.” “내가 무엇을 그려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닫기 전에 금기는 없다.”

음부까지 묘사한 여인 누드를 그렸고, 임산부와 미성년자도 모델로 세웠다. 급기야 부도덕한 그림을 그렸다는 이유로 감옥까지 갔던 시대의 이단아. 결혼을 하고 아버지가 될 꿈에 젖을 즈음 아내를 잃고, 아내를 따르듯 그도 같은 스페인독감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때 나이 불과 28세였다. 화가로서의 성공을 맛보던 순간, 그는 갔다.

그런데 그는 사후 왜 그렇게 빨리 잊혀졌을까? 작가는 추리소설적 재미와 서사의 깊이를 추구하면서 이 질문을 풀어간다. 사실이 비어있는 곳에서 상상이 빛난다. 소설을 읽다보면 누구라도 에곤 실레의 그림을 들추지 않고선 배기지 못할 것 같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은 왜 인간을 거듭나게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습니다.”

한 예술가의 삶과 예술을 탐색한 슬프고도 아름다운 소설이다. 때마침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오스트리아 디터 베르너 감독의 신작 ‘에곤 실레: 욕망이 그린 그림’이 상영됐다.

글=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사진=이병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