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소프트 브렉시트는 없다” 강경 방침

입력 2016-10-15 00:03

유럽연합(EU)과 영국이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를 두고 강대강으로 치닫고 있다. 영국의 ‘완전한 결별’ 선언에 EU는 “나눠 먹을 케이크는 없다”고 맞불을 놨다. 불과 수개월 앞으로 다가온 협상에 앞서 EU가 영국을 거세게 몰아붙이고 있다. 영국은 파운드화 가치 하락, 스코틀랜드 독립 추진 등 악재가 잇따르며 안팎으로 치이는 형국이다.

13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도날트 투스크(사진)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벨기에 브뤼셀 연설에서 “하드(hard) 브렉시트가 아니면 노(no) 브렉시트”라고 밝혔다. 이어 “소프트(soft) 브렉시트는 순진한 착각에 불과하다”며 “브렉시트 이후 영국은 EU 회원국 혜택을 다시 누리지 못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또 “EU의 케이크도 먹을 수 있다”는 보리스 존슨 영국 외무부 장관의 발언을 겨냥해 “케이크는 사서 먹어라”라고 강경 발언을 이어갔다. 협상을 진두지휘할 투스크 상임의장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은 처음이다.

하드 브렉시트 우려는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가 밝힌 청사진이 불을 지폈다. 메이 총리는 지난 2일 BBC 인터뷰에서 “늦어도 내년 3월까지 리스본 조약 50조를 발동하겠다”고 밝혔다. 이 조항이 발동되면 영국은 EU에 탈퇴 의사를 공식 통보하고 2년 동안 협상에 돌입한다. 문제는 시간이다. 브렉시트가 급격하게 전개되면서 EU와 영국은 충분한 준비 없이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이 커졌다. 2019년 3월까지 합의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영국은 자동으로 EU를 탈퇴한다.

하드 브렉시트와 소프트 브렉시트를 구분하는 명확한 기준은 없다. 일반적으로 브렉시트 후 EU와의 사람·상품·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지속하자는 쪽이 소프트, 주권을 강화하고 이민자를 통제하자는 입장이 하드 브렉시트다. 당연히 하드 브렉시트가 유럽에 몰고 올 파장이 더 크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규탄이 잇따르고 심지어 보수당에서도 “닫힌 영국을 지향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메이 총리는 “독립적이며 완벽한 주권을 행사하겠다”며 하드 브렉시트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거두는 대신 이민자 통제를 강조하고 있다. ‘제 갈 길을 가겠다’는 것이다.

우려는 이미 현실이 됐다. 영국 중앙은행은 전날 파운드화 가치가 사상 최저치로 떨어졌다고 밝혔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브렉시트 비용이 200억 유로(약 24조9200억원)에 달한다는 암울한 전망을 내놨다. 더타임스는 영국이 하드 브렉시트를 선택할 경우 EU에 남는 것에 비해 15년 후 국내총생산(GDP)이 최대 9.5%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추산했다.

경제 문제만이 아니다. 영국 내무부는 13일 지난 7월 혐오범죄가 5468건 발생해 전년 동기 대비 41% 늘었다고 밝혔다. 여기에 2014년 분리독립을 추진했던 스코틀랜드가 다시 독립 준비에 나섰다. 니콜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은 “브렉시트 전에 다시 독립을 묻겠다”며 “다음주 주민투표 초안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가디언은 영국이 냉혹한 선택(stark choice)에 직면했다고 평가했다.

신훈 기자 zorb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