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미국 가수 밥 딜런(75)이 선정된 직후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쏟아지고 있는데, 이번 결정이 얼마나 이례적인 것이었는지, 그리고 밥 딜런이 얼마나 유명한 가수였는지 새삼 확인시켜 준다. 또 하나 분명한 것은 노쇠한 이미지로 비쳤고 문학전문가들의 집안 잔치 정도로 여겨졌던 노벨 문학상이 전 세계의 이목을 확실히 집중시켰다는 점일 것이다.
올해 노벨 문학상을 둘러싼 논란은 다양한 논점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특징적이다. 단순히 밥 딜런에게 노벨 문학상을 준 게 적정했는지에 한정되지 않는다. 이번 선정을 노벨 문학상의 변화 신호로 읽고, 이 같은 변화를 지지 또는 우려하는 목소리가 대립하고 있다. 보다 근본적인 이야기는 노래를 문학으로 인정할 것이냐를 둘러싸고 형성되고 있다.
올해 노벨 문학상 후보이기도 했던 미국의 여성 소설가 조이스 캐럴 오츠는 트위터를 통해 “딜런의 음악은 아주 깊은 의미에서 ‘문학적’이었다”고 평가하면서 스웨덴 한림원의 결정을 환영했다. 인도 출신의 영국 소설가 살만 루슈디 역시 “오르페우스(그리스 신화의 음유시인)부터 파이즈(파키스탄 가수)까지 음악과 시는 매우 가까이 연결돼 있다”면서 “음유시인 전통의 뛰어난 후계자”로서 밥 딜런의 수상 자격은 충분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노쇠하고 영문 모를 말을 지껄이는 히피의 썩은 내 나는 전립선에서 짜낸 병든 노스탤지어”라고 이번 결정을 혹평한 어빈 웰시(스코틀랜드 소설가)처럼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도 있다. 웰시는 “음악 팬이라면 사전을 펴놓고 ‘음악’과 ‘문학’을 차례로 찾아서 비교하고 대조해 보라”며 음악과 문학은 구별돼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국내에서도 가요계에서는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지만 문학계에서는 상반된 반응이 보인다. 오길영 충남대 교수(문학평론가)는 “나는 내심 필립 로스가 수상하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딜런의 수상도 뜻밖의 즐거움이다”라며 “‘문학’의 경계를 넓히고, 우리시대의 문학이 무엇인가를 되묻게 만들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문학계 원로인 김화영 고려대 불문과 명예교수는 “코미디처럼 느껴진다”고 반응했다. 그는 “훌륭한 작가가 필립 로스 등 미국에만도 넘친다. 문학이라는 큰 배가 타이태닉호가 돼가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올해 노벨 문학상이 대중가요를 문학의 영역으로 수용함에 따라 문학의 선을 새로 그어야 하는 문제를 던졌다. 이를 두고 문학의 경계를 확장했다며 박수를 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노벨 문학상이 대중주의에 영합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또 앞으로 많은 가수들이 노벨 문학상 후보로 떠오를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사실 노래를 문학으로 승인할 것이냐를 둘러싼 논란은 이번에 처음 등장한 게 아니다. 14일자 파이낸셜타임스는 1991년 영국의 시나리오작가 데이비드 헤어가 촉발한 ‘키츠 대 딜런’ 논쟁을 소개했다. 그는 이 논쟁에서 “시인이 의문의 여지없이 가수보다 더 나은 작가이다”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이미 당시에도 노래의 문학성 인증 논란이 있었고, 그 중심에 밥 딜런이 있었음을 알려준다. 올해 노벨 문학상은 이 오래된 논란과 관련해 하나의 중요한 판정을 내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노래를 문학으로 인정할 때, 해외문학 수용자 입장에서는 번역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콩글리시 찬가’를 출간한 번역가 신견식씨는 “딴 언어로 옮기면 원어에서 손실이 생기므로 소설보다 특히 시 번역이 어려운데 읽는 시가 아닌 노랫말은 사실상 번역이 불가능한 걸 떠나 번역이 필요 없고 잘해야 번안만 될 뿐이다”라는 주장을 폈다. 그는 “딴 문학도 번역의 제약이 있겠지만 노랫말은 언어, 음악, 지역, 시대를 아는 사람 아니면 아쉽게도 제대로 누리기 더 힘든 문학”이라면서 “이번 노벨 문학상은 번역의 의의가 무엇인지 새롭게 물어봐야 하는 시대가 됐음을 삐딱하게 알리는 희뿌연 징후가 아닐까 싶다”고 덧붙였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사진=윤성호 기자
“문학의 경계 넓혔다” 찬사 VS “히피의 썩은 내 난다” 혹평
입력 2016-10-14 18:04 수정 2016-10-14 2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