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정진엽] 흰지팡이의 날을 맞아

입력 2016-10-14 17:58

오늘(10월 15일)은 서른일곱 번째 흰지팡이의 날이다. 지팡이가 시각장애인의 보장구로서 법적 지위를 갖게 된 것은 1930년 미국 일리노이주 페오리아에서 ‘흰지팡이 법’을 제정하면서부터다. 비장애인이 시각장애인을 쉽게 식별하고 길을 양보하거나 운전자가 서행해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후 1980년 헬렌 켈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세계맹인복지협의회(현 세계맹인연맹) 임원회의에서 이 날을 흰지팡이의 날로 결의하면서 역사가 시작되었다.

흰지팡이는 시각장애인의 자립을 의미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문화생활을 할 때, 나아가 직장생활에서도 시각장애인 앞에는 수많은 장벽이 도사리고 있다. 이러한 불편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흰지팡이이다. 또한 흰지팡이는 시각장애인의 참여를 의미한다. 흰지팡이를 통해 다양한 사회활동에 참여할 수 있고, 한 명의 사회구성원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다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흰지팡이는 사회에서 시각장애인이 고립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 시각장애인의 가장 큰 어려움은 혼자서 자유로운 이동이 여의치 않다는 점이다. 이동할 수 있는 권리가 확보되어야 자유로운 사회참여와 스스로의 의지에 기반한 활동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시각장애인의 이동 시 활용되는 흰지팡이와 안내견에 대한 사회적 인식 부족으로 시각장애인들이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여전히 존재한다.

한상복님이 쓴 ‘배려’라는 책에는 다음과 같은 사례가 나온다. 앞을 못 보는 사람이 등불을 들고 걷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당신은 앞도 못 보면서 어째서 등불을 들고 걷습니까”라고 묻자 “나는 앞을 못 보지만, 당신이 등불을 보고 나와 부딪히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라고 답변했다는 이야기다. 흰지팡이는 이 등불처럼 시각장애인의 이동을 도와주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이 시각장애인을 알아보는 지표이기도 하다. 흰지팡이를 든 사람이 있다면 운전자와 보행자가 모두 시각장애인을 배려하는 행동을 할 수 있는 사회문화의 조성이 필요하다.

흰지팡이 대신 안내견을 이용하는 경우 대중교통, 식당, 극장 등 공공시설 이용 시 제지당하거나 거부당하는 경우도 있다. 안내견은 시각장애인의 안전한 보행을 위해 훈련된 장애인 보조견으로 일반 애완견과 다름에도, 이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시선에는 큰 차이가 없는 까닭이다. 그렇지만 흰지팡이와 안내견은 단순한 보장구가 아니라 시각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해주는 ‘눈’과 같은 것이므로 이를 존중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정부는 시각장애인의 이동편의를 위해 활동보조지원, 보행환경에 관한 연구지원,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인증제 등을 시행하고 있다. 또한 편견으로 취업과정에서 차별을 겪지 않도록 다양한 시각장애인 적합 직종을 개발하고 일자리 진입장벽을 낮추도록 노력하고 있다. 장애인을 위한 정책과 배려는 단지 장애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며 비장애인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시각장애인의 지하철 추락사고를 막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비장애인의 안전까지도 담보하고 있는 스크린도어나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버스정차 안내방송과 정류장의 전광판 안내는 비장애인에게도 편리함을 가져다주는 좋은 사례다. ‘우리 모두 함께’ 사는 사회를 위해 장애인만을 위한 정책적 배려가 아니라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불편을 느끼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가기를 기대한다.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