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문학상은 미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화가인 밥 딜런(75)에게 돌아갔다. 관행을 뛰어넘은 파격이다.
스웨덴 한림원은 13일 팝 가수 딜런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로 “그가 노래의 형태로 시를 쓰는 것은 고대 그리스 음유시인의 전통과 다르지 않다”면서 “밥 딜런은 귀를 위한 시를 썼다. 그의 작품을 시로 간주하는 것은 적절하다”고 밝혔다.
딜런은 포크음악의 대부기도 하지만 영국 시인 ‘딜런 토머스’에서 ‘딜런’이라는 이름을 따 예명을 삼을 만큼 시적이고도 정치적인 가사로 유명하다. 음악으로도 포크와 록뿐만 아니라 컨트리, 가스펠, 블루스 등 여러 장르에 영향을 미쳤다.
딜런은 1941년 미국 미네소타주 덜루스의 유대인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로버트 앨런 지머맨(히브리어 샤브타이 지셀 벤 아브라함)이다. 10세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고, 1959년 미네소타대에 입학했으나 중퇴했다. 포크 가수 우디 거스리를 존경하던 그는 1961년 뉴욕으로 가 클럽과 카페에서 공연을 하다가 음반 제작가 존 하몬드의 눈에 들어 데뷔 앨범인 ‘밥 딜런’(1962)을 내게 된다.
“얼마나 많은 포탄이 날아다녀야 영원히 그걸 금지시킬까요? 친구여, 그건 바람만이 알지요.”
베트남전쟁 와중에 나온 이 앨범에 수록된 ‘블로잉 인 더 윈드(Blowin’ In The Wind)’의 가사는 당시 반전의 시대 분위기를 파고들었고, 단박에 그를 저항시인이자 시대를 대변하는 가수로 전 세계인에게 각인시켰다. ‘음유시인 밥 딜런’(한걸음더)을 출간한 손광수씨는 ‘바람만이 아는 대답’ ‘걸어가다 죽게 해주오’ ‘전쟁의 명수들’ 같은 노랫말을 언급하면서 “그의 앨범은 1960년대 흑인들의 인권운동, 젊은이들의 반문화 운동이나 반전운동이 열어놓은 정치·사회적 격류에 탯줄처럼 연결돼 있다”고 평가했다.
그의 음악은 대중음악의 지층을 흔들어 놓았다. 음악평론가 임진모씨는 “가사가 사랑과 이별에 머물러 있던 시절에 대중음악도 반전과 평화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각성을 불러일으켰다”며 “한국에서도 김민기 한대수 양희은 서유석 송창식 등 당시의 포크음악 가수들이 그로부터 영감을 받았고, 한국 청년문화 형성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하지만 의도치 않았던 저항가수로서의 굴레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는 당시 비틀스를 비롯한 영국 밴드의 전자 사운드에 자극을 받아 정통 어쿠스틱 포크에서 일렉트릭 사운드로의 전환을 시도한다.
주요 음반으로 ‘브링잉 잇 올 백 홈’(Bringing It All Back Home·1965), ‘하이웨이 61리비지티드’(Highway 61 Revisited·1965), ‘블로드 온 더 트랙’(Blood On The Tracks·1975), ‘오 머시’(Oh Mercy·1989), ‘타임 아웃 오브 마인드’(Time Out of Mind·2006) 등이 있다. 스웨덴 한림원은 “그의 많은 앨범은 인간, 종교, 정치, 사랑 같은 사회적 조건에 대한 진화를 담고 있다”고 소개했다.
시인이라는 평가에 대한 딜런의 생각은 어떠했을까. 유대인 중산층으로서의 정체성, 포크운동 부흥의 별 등 모든 규정을 거부했던 그다. 유일하게 거부하지 않은 게 시인이라는 호칭이다. “나는 시인이라고 말해보고 싶어요. 시인이란 반드시 종이 위에 글을 써야 하는 건 아니에요.”
그는 1999년 타임이 선정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포함되기도 했다. 음악평론가 임씨는 “대중음악을 하며 반전과 평화를 이야기한 노래는 없었다. 자유와 저항, 서정과 서사가 공존하는 20세기 문학사의 가장 걸출한 음유시인에게 노벨상이 돌아간 건 늦은 감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권남영 기자
yosohn@kmib.co.kr
“밥 딜런, 귀를 위한 시를 썼다”… 反戰·평화 음악으로 창조
입력 2016-10-14 00: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