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문학상은 미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화가인 밥 딜런(75)에게 돌아갔다는 점에서 기존의 관행을 뛰어넘은 파격이다. “미국의 위대한 대중음악 전통 안에서 시적 표현을 창조했다.” 스웨덴 한림원이 13일 밝힌 선정 이유는 장르 간 경계가 무너지는 통섭의 시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딜런은 과거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으나 전문가들은 세계적 권위를 가진 노벨문학상이 팝음악으로 돌아갈 것으로는 보지 않았다. 그만큼 상식을 깬 파격적인 시상이다. 스웨덴 한림원 측은 “그가 노래의 형태로 시를 쓰는 것은 고대 그리스의 음유시인의 전통과 다르지 않다”면서 “밥 딜런은 귀를 위한 시를 썼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시로 간주하는 것은 적절하다”고 강조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임진모 음악평론가는 “대중음악을 하며 반전과 평화를 이야기한 노래는 없었다. 자유와 저항, 서정과 서사가 공존하는 20세기 문학사의 가장 걸출한 음유시인에게 노벨상이 돌아간 건 늦은 감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미국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난 딜런의 본명은 로버트 앨런 지머맨(히브리어 샤브타이 지셀 벤 아브라함)이다. 그는 미국 포크음악의 대부이기도 하지만 영국 시인 ‘딜런 토머스’에서 ‘딜런’이라는 이름을 따 예명을 삼을 만큼 시적이고도 정치적인 가사로 유명하다. 1960년대부터 비공식 작자와 저항음악의 대표로서 사랑을 받았다.
그는 10세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고, 1959년 미네소타대에 입학했으나 1961년에 중퇴했다. 이후 자신의 우상인 포크 가수 우디 거스리를 만나기 위해 뉴욕으로 간다. 이곳에서 클럽을 전전하며 연주하던 그는 유명 음반 제작가 존 하몬드의 눈에 띄어 콜롬비아 레코드를 통해 데뷔하게 된다.
“얼마나 많은 포탄이 날아다녀야 영원히 그걸 금지시킬까요? 친구여, 그건 바람만이 알지요.”
베트남전쟁의 와중에 나온 앨범 ‘프리윌링 밥 딜링’에 수록된 ‘블로잉 인 더 윈드(Blowin' In The Wind)’는 반전의 가사로 그를 단박에 저항시인이자 시대를 대변하는 가수로 전 세계인에게 각인됐다. 특히 잭 케루악, 앨런 긴즈버그 등 비트닉 작가들의 영향을 받은 그의 시적인 가사는 대중음악에서 가사의 수준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의도치 않았던 저항가수로서의 굴레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는 언론과 자주 마찰을 일으키게 되며 당시 비틀스를 비롯한 브리티시 인베이전 밴드들의 일렉트릭 사운드에 자극을 받아 정통 어쿠스틱 포크에서 일렉트릭 사운드로의 전환을 시도한다. 이 시기 음반으로는 브링잉 잇 올 백 홈(Bringing It All Back Home·1965), 하이웨이 61리비티드(Highway 61 Revisited·1965) 등이 있다.
1966년 7월 오토바이를 타다가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한 딜런은 록밴드 더 밴드와 함께 잠적해 주로 루츠록(Roots Rock) 장르의 음악을 만든다. 1967년 즈음에는 컨트리로 전향해 컨트리의 본고장인 내슈빌에서 컨트리록 음반 존 웨슬리 하딩(John Wesley Harding·1967), 나쉬빌 스카이라인(Nashville Skyline·1969)을 발매하며 컨트리록 유행을 선도한다.
1999년 타임은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밥 딜런을 선정한 바 있다. 2008년에는 퓰리처상 표창장을 받았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장르의 파괴… 反戰·평화를 음악으로 창조하다
입력 2016-10-13 2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