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2014 아시아리그 아이스하키는 ‘불사조’의 날갯짓으로 공포에 떨었다. 한국에서 혜성처럼 나타난 신생팀 하나가 빙판 위를 이리저리 휘저으며 돌풍을 일으켰다. 대명 상무 피닉스. 대명그룹이 국군체육부대를 후원해 한시적으로 창단한 팀이었다.
선수는 군인 17명, 코칭스태프는 변선욱(42) 감독 1명이 전부였다. 시즌 중 부상자가 발생해도 대체인원을 투입할 수 없었다. 유럽이나 북미에서 공수한 외국인선수는 당연히 없었다. 김원중(32·안양 한라) 등 때마침 입대한 스타들이 있었지만 부족한 인원과 열악한 환경 탓에 상위권 진입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런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대명 상무는 승승장구했다. 투지와 끈끈한 조직력을 앞세워 적들을 하나둘씩 쓰러뜨렸다. 고작 12명의 선수를 라인업에 넣고 22명과 싸워 승리한 경기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리그를 2위에서 마감하고 플레이오프 준결승까지 진출했다.
대명은 올 시즌 상무를 순수한 국군체육부대로 남기고 신생팀 킬러웨일즈를 창단했다. 안양 한라, 강원 하이원에 이어 아시아리그에 뛰어든 한국의 제 3구단이다. 킬러웨일즈를 바라보는 시선은 상무를 후원했던 때와 다르지 않다. 그나마 당시엔 군복무를 위해 입대한 스타나 유망주로 선수단을 구성할 수 있었다. 웬만한 스타들은 이미 개막을 앞두고 한라나 하이원으로 입단했다. 뒤늦게 선수들을 물색했지만 팀 전력의 30%는 여전히 대졸선수다. 상위권 진입은커녕 1승도 쉽지 않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시작부터 쓴맛을 봤다. 시즌 초반 한국 최강 한라, 러시아 사할린과 각각 3연전씩 가졌지만 전패를 당했다. 하지만 이렇게 쌓은 경험은 걸음마 수준이던 킬러웨일즈의 보폭을 넓혔다.
킬러웨일즈의 송치영(35) 감독은 무모한 자신감보다 겸손한 태도로 경험을 축적해 한걸음씩 전진하고 있다. 패배할 때마다 원인을 분석해 전력을 보강하고, ‘형님 리더십’으로 선수들을 다독여 팀을 이끌고 있다. 주장 김범진(29)과 베테랑 수비수 오현호(30), 개막을 앞두고 영입한 이봉진(25)과 아담 에스토클렛(27·미국)는 송 감독에게 든든한 버팀목들이다.
이변의 조짐은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난달 10일 경기도 고양에서 하이원을 4대 3으로 이겨 감격적인 첫 승을 신고했다. 같은 달 25일 일본의 닛코 아이스벅스를 6대 3으로 격파하는 파란까지 일으켰다. 지난 2일부터 중국 차이나드래곤과의 2연전에서도 모두 승리했다. 1승도 어려울 것처럼 보였지만 벌써 4승을 쌓았다.
아직 패배(14패)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모두 소중한 경험이다. 2년 전 유라시아대륙 동쪽 끝에서 불타올랐던 불사조의 날갯짓을 범고래는 기억한다. 불사조의 기백을 물려받아 대양으로 뛰어든 범고래의 자맥질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왕초보’ 범고래의 기적 같은 ‘4승 점프’
입력 2016-10-14 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