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포지션이 다 중요하지만 포인트가드는 상황 판단과 작전 이해 능력이 뛰어나고, 게임을 리드하면서 적재적소에 공을 공급해 가장 좋은 슛 기회를 만들어줘야 하기 때문에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김선형은 신장 187㎝, 몸무게 78㎏으로 날렵하고 저돌적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코트 안에서만이다. 농구장에선 강한 남자지만 밖에선 연약하고 부드러운 남자다.
코트 안에선 저돌적이지만 부드러운 남자
그는 ‘응사’(TV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 카메오 출연한 문경은 감독으로부터 새 시즌을 앞두고 무거운 ‘완장’(주장)을 받았다. 그는 “어깨가 무겁다”는 소감 대신 “소통하고 먼저 모범을 보이는 주장이 되겠다”고 했다.
김선형은 인천 송도고에서 농구의 기본을 배웠다. “틀에 얽매이지 말라”는 다소 아리송한 농구철학을 전통으로 삼고 있는 송도고는 자타공인 한국 가드의 산실이다. 김동광 강동희 김승현 신기성 등 왕년의 스타들이 줄줄이 배출됐다.
포인트가드는 아니지만 이충희 정덕화 전 감독도 송도고 출신이다. 송도고 농구부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분이 있다. 일명 ‘할아버지’. 고(故) 전규삼(1915∼2003) 감독이다. 전 감독은 1961∼96년 송도중·고에서 무려 35년간 지도자 생활을 하며 창의력 교육의 터를 닦았다. 그가 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도 그 전통은 유산처럼 이어지고 있다.
한마디로 즐기는 농구다. 득점을 하는 게 정석이지만 쉽게 넣으면 되레 욕을 먹기도 한다. 최소한 비하인드 백패스, 노룩 패스, 상대 수비를 붙여놓고 더블클러치 레이업 슛 정도는 해줘야 혼나지 않았다고 했다.
‘틀에 얽매이지 않는 농구’를 하라
“물론 화려한 시도를 하다가 실패하는 것에 대해선 책임을 묻지 않았습니다. 선수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실력을 뽐낼 수 있었죠. 전 사실상 (전규삼) 할아버지한테 딱 한 번 배웠어요. 중학교 1학년 때였어요. ‘백 드리블’(등 뒤로 하는 드리블)은 이렇게 하는 거야. 그땐 이 기술이 얼마나 위력적이고 고급기술이라는 것을 몰랐어요.”
그가 엄한 목회자 아버지로부터 배운 것은 ‘신앙이 우선이다’는 생활철학이다. 공부와 운동도 중요하지만 주일성수를 어기면 불호령이 떨어졌다. 믿음이 먼저라는 원칙과 기준을 확실히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래서 가끔씩 친구들과 어울려 맘껏 놀다가, 태도가 불량한 친구들과 놀다가 들켜서 종아리를 맞은 적도 있다.
그런 아버지를 실망시켜드려 대단히 죄송한 일도 있었다. 지난해 9월 2015∼2016 시즌을 앞두고 일어난 일이다. 대학농구 시절 불법 스포츠 도박을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농구팬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다행히 기소유예 판결이 내렸다. 하지만 프로농구연맹(KBL)은 출전정지 20경기와 사회봉사활동 120시간의 징계를 내렸다.
코트를 밟지 못하는 동안 그는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에 위치한 장애인복지시설 ‘양지바른’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이는 김선형 인생에서 전환점이 됐다. 형식적인 봉사활동이 아니었다. 매순간 진심을 다했다. 처음엔 데면데면 하던 장애인 친구들이 마음을 열기 시작하더란다.
김선형은 120시간을 채운 뒤에도 꾸준히 봉사활동에 나서고 있다. 그는 또 재능기부 ‘5번 모여라’라는 주제로 케이블 방송 ‘모여라! No.5’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SK의 연고지 서울에 있는 남녀 초·중·고교 농구선수 중 김선형과 같은 등번호 5를 단 선수들을 초청하는 농구 클리닉 행사이다.
농구를 하면서 배운 것이 뭘까.
“감사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배웠다. SK에 입단하면서 매년 미국에서 스킬트레이닝을 접하고 내 농구를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받았다. 늘 감사하는 마음이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내가 받은 것을 농구가 발전하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그에게 농구는 사진이다. 게임을 하는 것은 사진을 찍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피사체를 정확하게 앵글 안에 넣고 최적의 상태에서 셔터를 누르듯이 슈팅을 해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는 것이다.
농구보다 신앙이 우선이다
목회자의 아들로 태어난 것이 자랑스럽다는 김선형은 천관웅 목사가 만든 ‘밀알’이라는 복음성가를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성경말씀은 중학교 다닐 때 송구영신 예배 때 뽑은 신명기 28장 1절이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내가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사전에 신앙적인 얘기는 가급적 하지 않겠다고 하더니 말문이 열리자 아랑곳하지 않았다. 두 살 아래 평범한 여자친구를 만나 잘 사귀고 있다고 빙그레 웃었다. 만난 지 1년 정도 됐는데 아주 많이 신뢰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빨리 결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축구 박주영 선수처럼 기도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싶어요. 농구에서는 골을 넣어도 바로 수비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그럴 수 없잖아요. 그래서 혼자 상상만으로 신앙의 세리머니를 해요.”
김선형은 하루 7시간 연습하고 쉬는 시간에 독서를 한다. 최근 주장을 맡은 뒤 ‘사소한 말 한마디의 힘’이란 책을 봤다고 했다.
평생 꿈이 뭐냐고 물었더니 의외의 대답을 했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승하고, 계속 발전하는 선수가 되겠습니다.”
앞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낙담하고 절망하는 후배들에게 김선형은 따뜻한 격려의 메시지를 전했다.
“‘작은 것에 집중하라’는 건데요. 큰 경기일수록 작은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사소한 패스 실수 하나가 승부를 가르기도 하거든요. 한 알의 밀알이 되겠다는 마음을 다하면 언젠간 큰 열매를 얻을 수 있습니다.”
글·사진=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
'코트 밖 파울' 선형이 善行이가 되다
입력 2016-10-14 21:01 수정 2016-10-16 1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