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옥살이가 많으면 나라가 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억울한 재판은 재심에 또 재심을 해서라도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됩니다.”
13일 오후 서울 역삼동 대한변호사협회 대강당. ‘춘천 파출소장 딸 살인사건’의 당사자인 정원섭(82) 목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마이크 앞에 섰다. 그는 ‘대한민국 형사재심(再審) 제도의 실태·개선방안’을 주제로 열린 토론회의 ‘증언자’로 참석했다. 돋보기를 쓴 그는 원고를 쳐다보지 않고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제가 당시 고문을 당하다 결국 ‘자백’이란 걸 하니까 수사과장이 저를 찾아와 이렇게 묻더군요. ‘우리나라 범인 검거율이 세계 몇 등인지 아느냐’고. 정답은 1등이래요. 근데 1970년대 우리나라에는 수사 기술도, 기계도 없었습니다. 그 시절 거짓말탐지기는 바로 ‘몽둥이’였어요.”
정 목사는 1972년 파출소장의 11살 딸을 성폭행한 뒤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5년간 옥살이 끝에 풀려났다. 감옥에서 수차례 자살 시도를 했다. 세상 밖으로 나온 뒤 신학공부에 매진했다. 하지만 억울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재심을 결심했다. 77세이던 2011년 그는 결국 무죄를 선고받고 39년간 그를 옭아맸던 살인 누명을 벗었다. 이 사연은 영화 ‘7번방의 선물’의 모티브가 돼 영화화되기도 했다.
토론회에는 현재 재심 중인 ‘삼례 3인조 강도치사사건’의 당사자 최대열(36)씨도 참석했다. “형사가 잠깐 나오라고 해서 따라갔는데 갑자기 살인죄로 체포한다고, 제가 누나랑 여동생 엄마 아빠 위해서 일용직 하던 시절이었거든요” 당시 19살이었던 최씨는 지적장애자였다. 경찰의 강압수사 끝에 그는 ‘3인조’로 묶여 기소됐고,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최씨는 “재심이 빨리 마무리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최근 언론보도로 다시 세상에 알려진 ‘부산 엄궁동 2인조 강간살인사건’의 당사자 장모씨는 “출소 후 가슴 속 한(恨)을 풀 방법은 나를 고문한 경찰을 찾아가 보복하는 것밖에 없는 것만 같았다”며 “하지만 억울한 옥바라지를 해준 아내와 자녀들에게 또다시 슬픔을 줄 수 없었다”고 울먹였다. 그는 “아직도 21년 전 재판을 생생하게 기억한다”고 했다. 장씨는 현재 재심 청구를 준비 중이다.
현행 형사소송법은 재심 사유를 ‘원 판결에 사용된 증거가 위·변조됐거나 허위임이 증명된 때’ 등으로 규정한다. 재판에 명백한 오판(誤判)이 있었다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최씨와 장씨 등 재심사건의 변호를 맡고 있는 박준영 변호사는 “과거 반인권적 수사·재판에 대해 ‘그때는 그랬다’라는 논리로 넘어갈 수는 없다”며 “억울한 누명을 쓴 채로 유죄판결을 받아 평생 고통에 시달려온 피해자에게 무엇보다 중요하고 현실적인 방안은 재심뿐”이라고 말했다. 한상훈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과거 오판을 바로잡는 것 못지않게 현재 오판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사진=윤성호 기자
“몽둥이·고문·강압 수사 등 반인권적 수사·재판 통한 옥살이, 거듭된 재심 통해서라도 진실 밝혀야”
입력 2016-10-14 0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