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을 “도망가는 야생동물 무리”에 비유한 美 경찰

입력 2016-10-14 00:03
경찰이 쏜 총에 흑인이 잇따라 쓰러지면서 흑백 갈등이 불붙은 미국에서 ‘경찰이 흑인을 차별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인종차별적 공권력 남용을 규탄하는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이 다시 거세질 전망이다. 미 법무부는 12일(현지시간) ‘공동 개선 계획: 샌프란시스코 경찰 평가’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간했다. 432쪽 분량의 이 보고서는 경찰의 흑인 차별 실태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법무부의 로널드 데이비스 국장은 “조사 결과 경찰이 무력을 사용하거나 검문을 할 때 유색인종을 차별한다고 볼 수 있는 다양한 사례가 나왔다”고 밝혔다. 다만 “샌프란시스코 경찰이 조직적으로 인종차별적 편견에서 공권력을 사용했다는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선을 그었다.

보고서의 발단은 두 흑인 청년의 죽음이다. 지난해 12월 샌프란시스코 경찰은 행인을 흉기로 찌르고 달아나던 20대 흑인 남성 마리오 우즈를 사살했다. 당시 경찰은 “우즈가 흉기를 버리라는 경고를 무시한 채 위협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찰관 5명이 우즈를 포위하고 총격을 가하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 뒤늦게 언론에 공개되면서 공권력 남용과 인종차별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부검 결과 우즈의 몸에선 21개의 총알이 발견됐다.

여기에다 지난 5월 훔친 차량을 타고 있던 20대 흑인 여성이 경찰에 사살되며 논란은 더욱 가열됐다. 흑인을 ‘탈주 중인 야생동물 무리’에 비유한 경찰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가 공개되기도 했다. 인종차별 논란으로 지역 사회가 분열되고, 폭력시위가 이어지며 갈등으로 치닫자 에드 리 샌프란시스코 시장은 법무부에 조사를 요청했다. 경찰서장은 사표를 냈다.

법무부 조사 결과 흑인 사회에서 주장한 경찰의 인종차별적 행태가 사실인 것으로 드러났다. 2013년 5월부터 3년 동안 샌프란시스코에서 경찰에 의해 사살된 11명 중 9명이 유색인종인 것으로 조사됐다. 같은 기간 경찰의 무력 사용 550건 중 37%가 흑인이 관련된 사건에서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차량 검문 33만건 중 15%가 흑인 운전자를 대상으로 실시됐다. 샌프란시스코 인구 중 흑인은 6%에 불과하다. 보고서는 흑인이 백인보다 체포되거나 구금될 확률도 높다고 꼬집었다.

법무부는 권총 같은 살상 무기 대신 전기충격기를 사용하고 경찰관이 인종차별적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교육하라는 내용 등을 담은 272개 조항의 권고사항을 보고서에 담았다. 리 시장은 성명을 내고 “샌프란시스코 경찰에 법무부의 권고사항을 즉각 이행하라고 지시하겠다”며 “생명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인종차별 없이 누구나 공정하게 대우 받는 경찰과 지역 사회를 만드는 데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신훈 기자 zorb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