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에 교파를 아울러 작은교회박람회가 열렸다. 벌써 네 번째다. 누군들 애초부터 작은교회를 목표로 할까 싶었지만 박람회장을 돌아보면서 작은교회로서의 당당함이 느껴졌다. 혹여 경제적으로 어려운 교회들끼리 자구책을 위한 몸부림이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기대와 달리 가난에서 묻어나는 초라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교회는 처음부터 가난했다. 감리회 연회회의록 영인본을 관심 있게 읽어본 일이 있다. 감리교회는 1970년 중반까지 감독이 직권으로 목회자를 개체 교회로 명하는 파송제였다. 해마다 연회가 열리면 임지를 옮길 순번인 목회자들은 어느 교회에 파송 받느냐에 촉각을 세우게 마련이었다. 새 임지가 형편이 넉넉한 교회면 좋겠지만 가족의 생계를 꾸리기조차 힘겨운 교회가 더 많았다. 파송하는 감독의 마음도 편치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목회자 가정을 위해 흑염소 한 마리씩 주었는데, 나중에 새끼를 낳으면 한 마리를 되갚는 조건이었다. 한때 목회자 자녀들이 흑염소 젖을 먹고 자란 배경이다. 당시 회의록에 추억처럼 남아 있는 흑염소 이야기는 가난한 동역자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가득하다.
이제 교회는 더 이상 가난하지 않다. 교회 밖 사람에게 교회의 양극화 문제는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대개 교회는 부자라고 여긴다. 그런 편견을 갖는 이유는 외견상 교회 건물이 웅장하거나 아니면 교회 안팎에 들리는 추문 중에 돈과 관련된 비리가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부자를 좋아하고, 부자를 추구하고, 부자정책을 지지한다. 교인이든 아니든 사람들은 교회가 가난한 사람을 편든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청빈과 겸비를 이 시대 목회자의 덕목으로 기대하지 않는다. ‘김영란법’이 종교인을 비켜간 이유에 대해 누구도 시비하지 않는 이유다.
1987년부터 8년 동안 한국에서 활동한 루츠 드레셔 독일 선교사는 내내 가난한 교회를 섬겼다. 서울 하계동 주변에 살던 양돈농장 사람들이 그가 만난 교인들이었다. 그는 자신의 시선으로 본 한국교회 특징을 독일교회에 전했다. ‘교회 갈 때 성경을 가지고 다닌다, 예수님 믿으면 부자가 되려니 생각한다, 소리 내어 기도한다, 제일 부자교회와 제일 가난한 교회가 공존한다, 목사가 운전사 딸린 자가용을 탄다’는 식이다.
파란 눈으로 포착한 한국교회의 모습은 정작 우리에게조차 잘 보이지 않던 것들이었다. 관찰은 너무 낯설어 오히려 우스꽝스럽지만 애정이 담겨 있어 따듯하다. 사실 국외자와 다름없는 교회 밖 사람들의 시선은 이보다 훨씬 냉정하다. 안티 기독교사이트에 가득한 반(反)복음적 메시지와 역(逆)교회적 발언이 대표적이다. 교회가 지닌 현상적 부유함이 세상을 따듯하게 바꾸는 에너지가 되지 못한다는 점은 분노로 되돌아오고 있다.
최근 교회는 큰 위기를 맞았다고 자가진단한다. 저성장시대와 고령화 사회는 이미 교회 안에서부터 시작됐다. 각종 지표에서 보듯 우리 사회는 세대 변화와 함께 경제적으로 격변을 맞고 있다. 그동안 교회가 성장의 열매를 취해 온 것처럼 위기의 부산물을 고스란히 떠안게 될 것은 자명하다. 지금 교회는 잃어버릴 것이 많은 부자처럼 불안해하고 있다. 무엇인가 대단한 것을 이루었다는 자족감이 스스로 소외시키는 것은 아닐까 싶다.
내년으로 다가온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한국루터교회는 “나그네로 살자, 거지로 살자, 머슴으로 살자”란 슬로건을 내걸었다. 일찍이 마르틴 루터는 “우리는 거지다. 이 말은 참되다”고 말한 바 있다. 작은교회박람회는 가난하되 부요한 교회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넘어서야 할 다음 세대의 교회상을 이미 보여주고 있었다.
송병구 색동교회 담임목사
[바이블시론-송병구] 가난하되 부요한 교회
입력 2016-10-13 1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