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부희령] 내 마음의 호수

입력 2016-10-13 19:06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호수가 보였다. 산을 오르는 일은 힘들고 지루했다. 호젓한 오솔길을 따라 피톤치드를 들이마시며 걷는 상쾌한 산행은 아니었으니까. 솎아낸 나무들을 실어 나르기 위해 거칠게 닦아놓은 도로를 따라 걸어야 했다. 트럭들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파헤쳐 놓은 길에는 그늘 한 점이 없었고, 잠시 엉덩이 붙이고 앉을 바위도 눈에 띄지 않았다. 한숨 돌릴 때는 키 크고 무뚝뚝한 침엽수들이 서 있는 숲 속으로 들어갔다. 쓰러져 있는 나무들과 이끼 낀 돌들 사이로 붉고 푸른 뱀이 나를 피해 달아났다.

오래전에 살던 시골집 뒷산 이야기다. 일주일에 한 번은 산에 올랐다. 그때는 잘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산 너머에 있는 호수를 보려고 기어이 꼭대기까지 올라갔던 것 같다. 물론 차를 타고 이십분만 이동하면 코앞에 호수가 나타났다. 그런데 그 호수는 그 호수가 아니었다. 산 위에서 내려다보던 호수에는 사람 손을 탄 탁한 기운이 없었다. 둥둥 떠다니는 스티로폼 조각이나 페트병들도 없었고, 악취에 가까운 물비린내도 나지 않았다. 멀리서 보는 호수는 저녁하늘 같은 남빛으로 가라앉은 침묵이었다. 한 시간 반쯤 땀 흘리며 올라가야, 그 정도의 진정성으로 확보된 거리가 있어야, 숨겨둔 미덕처럼 홀연 나타나던 물빛. 그 물빛을 함께 나눌 친구가 없어 나는 조금 외로웠으나, 외로움을 좋아할 수 있었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의 뒷산에 오르면 서울의 한 자락이 펼쳐진다. 볼 때마다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드는 허여멀건 아파트들, 산비탈을 따라 늘어서 있는 크고 작은 집들. 하루에 만나는 사람들 숫자가 다섯 손가락 안쪽이던 산골에서 살 때 그토록 그리워하던 풍경, 사람들이 사는 풍경이다. 즐비한 지붕들과 창문들은 와글와글 저마다의 사연을 호소하고 있는 듯 보인다. 집들은 너무 말이 많다. 푸른 호수는 보이지 않고. 예전에 본 영화의 제목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나는 여전히 조금 외로운 건가.

글=부희령(소설가), 삽화=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