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거룩한 삶을 살려고 애쓰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매일 매일 자신을 돌아보며 부족함을 느끼고 염려 속에서 지냅니다. 그것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하나님의 사람의 삶인지를 근심하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목회자와 성도가 되어야 하는지를 돌아보며 살게 됩니다.
오늘 본문 1절에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어디로 갈까’를 고민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주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한다는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는 말씀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이미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0장에서 양과 목자의 비유를 통해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목자에 관해 설명하셨습니다. 또 12장에서는 주님의 발에 향유를 부은 사건을 통해 당신의 죽으심을 암시하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죄 용서함을 주실 수 있는 주체를 설명하시며 성만찬을 통해 당신의 죽으심을 설명하셨습니다.
이러한 과정의 말씀을 다 하시고 나자 제자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요. 제자들은 예수님을 쫓아가면서 자기들이 꿈과 기대에 부풀어 있다가 예수님께서 당신의 죽으심을 말씀하시니 청천벽력과 같은 선언이 되어 버렸음을 근심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죽으시면 우리는 무엇이 될까를 근심하게 됐습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을 따라온 목적이 없어지게 되는 탓입니다. 예수님께서 왕이 되시면 그로 인해 얻어질 것이 많으리라 내심 기대했던 부분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토록 고생했던 모든 일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리는 일로 제자들은 심각하게 근심하게 됩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당신이 죽으실 것을 설명하며 그 말씀을 듣고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내가 죽는 것이 전부가 아니요 끝이 아니라 이제 새로운 약속을 보여주고 가르쳐 주기 위한 약속임을 설명하십니다. 즉 “내가 죽는 것에 대해 근심하지 말라”고 당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자신 있게 말씀하실 수 있는 이유는 분명히 부활을 보여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실 수 있기에 자신 있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만약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정확히 이해했더라면 마냥 근심하고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소한 문제에 얽매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고난 당하심이 우리를 속죄하시기 위한 방법이며 또 다른 비밀을 보이시기 위한 계획이라면 즐거운 마음으로 죽으심을 배웅하게 됐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후일 예수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또 순교를 감사히 받아들였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혹시 나는 먹고 사는 일로 인해 계획하고 노력하고 근심하는 이들을 향해 ‘근심이 죄’라고 정죄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하게 됩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2∼3)
이제부터 ‘거룩한 근심’을 하며 살아가길 바랍니다. ‘나의 어떤 삶을 통해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이런 고민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정 행복한 목회자요 행복한 성도가 되는 길이 아닐까 다시 한 번 생각해봅니다.
박형철 목사 (서울 한우리교회)
◇약력=△현 국제강해설교연구원 원장, 바이블아카데미 부원장, 예장호헌 총회 목회대학원 학장, 서울시경찰청 지도위원
[오늘의 설교] 거룩한 근심
입력 2016-10-13 2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