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키’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스우시(Swoosh)’라고 불리는 나이키의 로고는 아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로고일 것이다. 이 로고를 만든 이는 여대생 캐럴린 데이빗슨이었다. 1971년 그녀가 이 로고를 디자인한 대가로 받은 돈은 35달러였다.
미국의 스포츠용품 브랜드 나이키는 너무나 유명하지만, 나이키 창업자이자 1964년부터 2004년까지 40년간 최고경영자를 맡았던 필 나이트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나이키를 주제로 한 대부분의 이야기에서 그의 존재는 드러나지 않는다. 그가 ‘은둔의 경영자’, 혹은 ‘괴짜’로 불리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슈독(Shoe Dog·신발 연구에 미친 사람)’은 필 나이트가 “내가 나이키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며 쓴 개인 회고록이자 나이키 창업기다. 지난 4월 미국에서 처음 출간됐고, 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 책은 나이키가 가지는 권위적 이미지를 단번에 해체한다. 나이키는 아디다스와 퓨마는 물론 일본 아식스보다도 늦게 출발한 젊은 기업이었고, 달리기를 좋아하는 괴짜 청년들이 창업한 벤처기업이었다.
스탠퍼드대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은 청년 필 나이트는 비행기를 한 번도 타보지 않은 미국인이 90%였던 그 시대 세계 배낭여행을 마치고 고향인 오리건주로 돌아와 1963년 24세의 나이에 혼자 사업을 시작했다. 아버지에게 50달러를 빌려서 일본 오니쓰카(현 아식스)의 러닝화를 수입해 파는 일에 뛰어든 것이다.
그는 오리건대의 뛰어난 육상 선수였고, 무엇보다 스포츠와 함께 살아가는 인생을 원했다. 좋은 학력과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국 스스로 ‘미친 생각(Crazy Idea)’이라고 불렀던 신발 파는 일을 선택했다.
“세상 사람들이 미쳤다고 말하더라도 신경 쓰지 말자. 멈추지 않고 계속 가는 거다.” 청년 필 나이트의 이 선언은 나이키를 대표했던 미국 육상 스타 스티브 프리폰테인의 말 “달리기는 예술이다. 작전은 필요 없고 오직 열심히 뛸 뿐”과 함께 나이키의 정신이 됐다.
‘블루 리본 스포츠’라는 이름의 수입상이 나이키라는 독립 브랜드로 출발한 것은 1971년이었다. 나이키의 런칭은 사실 고육지책이었다. 오니쓰카와의 관계가 악화돼 신발 공급이 중단될 위기에 처하자 자체 브랜드라는 돌파구를 찾아낸 것이다.
이 책은 나이키의 초기 역사를 상세하게 알려준다. 필 나이트와 함께 이 시기를 주도했던 빌 바우어만(공동 창업자·필 나이트의 스승이자 전설적인 육상 코치), 제프 존슨(나이키의 첫 번째 직원·육상 선수 출신으로 필 나이트의 스탠퍼드대 동기), 보브 우델(육상 선수 출신으로 나이키의 조직 운영과 관리 책임자) 등은 모두 달리기에 빠진 괴짜들이었다. 나이키는 달리기를 좋아하는 창업주와 동료들, 그리고 프리폰테인 등 위대한 육상 선수들이 일궈낸 기업이었다.
책은 1980년 나이키의 주식 공모에서 끝난다. 그와 동료들은 여러 차례 주식 공모를 생각했지만 번번이 거부해 왔다. “주식 공모를 하면 순식간에 많은 돈이 들어온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우리가 싫어하는 일, 지금까지 피하려고 했던 일을 하게 만들 수도 있다.”
필 나이트는 1980년 이후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은 채 다시 입을 다물었다. 상장 이후의 나이키는 예전의 나이키가 아니란 뜻일까. 아마도 그 이후의 나이키는 젊은 달리기 괴짜들의 모험적인 기업, “우리가 하는 일에는 의미가 있어야 한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무너져서는 안 된다” “사업의 목적이 돈을 버는 데만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당돌하게 외치던 그 회사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필 나이트는 이 책을 쓰기 위해 글쓰기강좌를 들었고,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글을 완성했다고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는 지난 7월 나이키 이사회 의장 자리에서도 은퇴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책과 길-슈독] 육상에 미친 이들이 ‘미친 생각’으로 일군 나이키
입력 2016-10-13 1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