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에겐 시가 모국이다. 1992년 독일로 떠나 그곳에서 살아온 지 햇수로 25년째인 허수경(52) 시인. 생의 거의 절반을 이국에서 보냈다. 그의 정체성은 경계인이다. 그래서인가. 시인은 ‘변신’의 작가 카프카의 나라에 살면서 “얼마나 오래/ 이 안을 걸어 다녀야// 나는 없어지고/ 시인은 탄생하는가”라며 물레질하듯 운명 같은 시작(詩作)의 결과물을 내놓았다.
허씨가 5년 만의 신작 시집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문학과지성사)를 출간했다. ‘시인의 말’에서처럼 “아직 도착하지 않은 시를 기다리다가 역에서 쓴 시들이 주종을 이룬 시집”이기에 이런 제목이 붙었다.
어느 새 중년에 이르러 그가 주목하는 것은 딸기, 레몬, 포도, 수박, 자두, 오렌지, 호두 같은 것들이다. 어느 날 식탁에 올랐을 과일들이다. 태양과 바람과 시간에 의해 영근 그 자연의 선물을 베어 무는 순간, 그가 맛보는 것은 시고 달달한 과즙이 아니다. 생의 아릿한 맛이다. 사랑과 이별, 청춘과 세월, 간밤 사이에 바뀌는 삶과 죽음을 그 평범한 과일을 통해 사유하는 돌올한 재주가 반짝거린다.
‘우리 아주 오래전부터/ 미끄러운 나비의 날갯짓에 익어가던 딸기처럼 살았지요’(‘딸기’) ‘올빼미들이 레몬을 물고 향이 거미줄처럼 엉킨 여름밤 속에서 사랑을 한다 당신 보고 싶다’(‘레몬’)와 같이 불현듯 사랑이 환기되기도 하고, ‘아직도 둥근 것을 보면 아파요/ 둥근 적이 없었던 청춘이 문득 돌아오다 길 잃은 것처럼’(‘수박’) 지나간 청춘에 통증을 느끼기도 한다. 뿐인가. ‘삶과 죽음의 사이는 어떻습니까/ 어느 해 포도나무는 숨을 멈추었습니다’(‘포도나무를 태우며’)와 같이 죽음의 이미지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자연의 열매를 마주하고 생의 비의를 느끼며 망연해 하던 시인은 그러나 다시 일어선다. 생의 춤을 추기 위해서다. ‘기쁨은 흐릿하게 오고/ 슬픔은 명랑하게 온다// 바람의 혀가 투명한 빛 속에/ 산다, 산다, 산다, 할 때// (중략)나는 춤추는 중’(‘나는 춤추는 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1988·실천문학사)에서 확고한 역사의식과 탁월한 시대감각으로 민중들의 삶을 질펀하게 풀어냈던 초기 시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이번 시집은 시간의 퇴적층이 만들어낸 전혀 다른 무늬로 다가온다. ‘우리’보다는 ‘나와 너’가 시의 중심을 더 차지한다.
이국생활의 고단함이 부른 그리움이 간간이 눈물자국처럼 떨어져 있기도 하다. ‘뭐 해요? 예, 여적 그러고 있어요. 목련, 가네요’(‘목련’)처럼 고향 경남 진주의 사투리가 부지불식 튀어나오기도 하고, ‘지난 계절/ 밥알마다 네 얼굴이 어려 있어’(‘밥빛’)라며 그리움은 밥빛으로 화한다. 파리의 테러, 루마니아 노숙자 등 현지의 사회 문제를 다루는 시가 더러 있으니 아직 그에겐 경계에서 바라보는 사회문제들인 것 같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책과 길-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생의 비의 딛고 맞는 슬픔은 명랑하다
입력 2016-10-13 1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