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투톱’마저… 한국기업 ‘시련의 터널’

입력 2016-10-13 00:05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2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50년 만기 국고채 발행 기념행사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뉴시스


과거 고유가 파동, 외환위기, 금융위기에도 오뚝이처럼 부활했던 한국 기업들이 최근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글로벌 경기침체와 내수 부진으로 최근 몇 년 새 허덕였던 한국 기업들이 올 들어서는 주력 업종의 구조조정과 상품 경쟁력 저하로 재기의 동력조차 찾지 못하는 듯한 분위기다. 여기에 대중국 경쟁력마저 저하되고 미래 성장동력으로 떠오르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비도 외국 기업들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는 등 사면초가에 빠지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혁신과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자칫 국가경제 전체가 장기 저성장의 늪에 더욱 깊이 빠질 것이란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잇단 구조조정에 삼성 리스크까지

삼성전자가 11일 갤럭시 노트7 단종을 선언한 것은 분야를 떠나 한국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고 있다. 그동안 한국경제 최후의 보루로 여겨졌던 삼성전자조차 기업 위기의 안전지대가 아닐 수 있다는 눈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써 올 IT 자동차 조선 중공업 등 한국 주력 업종의 선두기업들은 실적이나 신뢰에 큰 타격을 입은 셈이 됐다.

올해 조선·해운업 몰락은 한국 기업 쇠락의 신호탄이었다. 현대중공업은 올 들어 단 9척의 선박을 수주, 지난해 같은 기간(39척)의 4분의 1 수준으로 추락했다. 1∼7월 누적 수주 금액도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70% 이상 줄었다. 세계 7위 해운선사였던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간 뒤 펼쳐진 글로벌 물류대란은 우리나라가 해운강국의 위상에서 추락했음을 보여준 상징이 돼버렸다.

삼성전자의 갤럭시 노트7 파문은 향후 실적악화 외에 전자업계 전체의 입지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갤럭시 노트7 단종으로 최대 2조5000억원의 손실이 우려되고 브랜드 이미지 타격은 환산할 수조차 없다. 외국인들이 ‘한국 IT=삼성전자’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만큼 IT 수출 등에도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자동차는 올 상반기 영업이익과 영업이익률 모두 2011년 이래 최악을 기록했다. 최근 장기 노사 갈등과 국내외에서 불거진 잇단 리콜 파문은 당분간 실적 회복의 기대를 접게 하고 있다.

한국기업 전체 체력 급격 약화

주력 기업의 최근 침체가 도드라졌을 뿐 우리 기업 전체의 기초체력은 일찌감치 바닥을 보였다. 한계기업은 증가하고 있고 제조업 가동률과 수익성은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12일 전국경제인연합회 등의 자료를 보면 3년 연속 이자비용이 영업이익보다 많은 한계기업이 전체 기업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은 2014년 14.3%에서 지난해 14.7%로 올랐다. 또 기업의 수익성을 보여주는 영업이익률은 1991∼1995년 연평균 6.6%였다가 2011∼2015년 3.9%로 대폭 낮아졌다.

현재의 영업 부진보다 글로벌 경쟁력 및 미래 성장성이 어둡다는 점은 우리 기업의 한계를 보여준다는 면에서 더욱 뼈아프다.

산업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국내 12개 주력 업종 가운데 10개 업종에서 중국과의 경쟁에서 (추월될 우려가 있는) 심각한 상태”라고 주장했다.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소프트웨어 분야의 인수·합병(M&A)은 우리가 미국의 약 50분의 1 수준에 그쳤다.

LG경제연구원 이한득 연구위원은 “기업 활력 부진으로 우리 경제 전체의 효율성과 역동성 저하가 우려된다”며 “기업 성과를 제고하기 위한 다각적인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기업들이 최근의 시련을 전화위복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는 조언도 잇따르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주원 경제연구실장은 “최근 글로벌 경쟁력이 심화되면서 삼성전자 등 주력 기업들이 어떻게든 단기 실적이라도 내야겠다는 강박관념이 강해진 것 같다”며 “시간을 들여서라도 연구·개발, 품질관리 등 산업 경쟁력 강화를 통해 혁신을 이뤄내야 한다”고 당부했다.







글=고세욱 기자 swkoh@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