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 도심 속 시민들 명품 선율에 빠지다

입력 2016-10-13 20:41
김보미 연세대 교수와 합창단 ‘연세콘서트콰이어’가 지난 10일 서울 중구 정동제일교회에서 열린 ‘월요정오음악회’에서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이 교회에서는 매년 봄·가을이면 목요일과 금요일 정오에 ‘기도와 오르간이 있는 정오연주회’도 열린다. 김보연 인턴기자

소슬한 가을바람이 불던 지난 10일, 서울 정동제일교회(송기성 목사) 벧엘예배당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 건 낮 12시쯤이었다. 교인처럼 보이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서울시청 일대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회사원, 덕수궁이나 정동길을 구경하러 온 관광객이 대부분이었다. 12시가 넘어서자 예배당에 모인 인원은 200여명에 달했다. 이들이 평일 점심 교회를 찾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정동제일교회가 선보이는 명품 공연

이날 예배당에 모인 사람들은 정동제일교회가 개최하는 ‘월요정오음악회’를 찾은 관객들이었다. 음악회가 시작된 건 12시10분쯤. 사회자가 걸어 나와 인사를 건네자 관객들은 큰 박수로 화답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음악 듣기 딱 좋은 날씨네요. 오늘 공연을 꾸며주실 분은 연세대 김보미 교수님과 이 대학 합창단 ‘연세콘서트콰이어’입니다.”

소개가 끝나자 김 교수와 합창단이 동시에 입장했다. 김 교수는 여성 최초로 5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오스트리아 빈소년합창단의 지휘자를 역임한 세계적 음악가였다.

김 교수가 연세콘서트콰이어와 선보인 첫 곡은 브람스의 ‘밤을 노래함(In Stiller Nacht)’. 선율이 흘러나오자 일부 관객은 눈을 감고 음악을 음미했다. 예배당은 아름다운 하모니로 가득 찼고, 강대상 뒤 벽면에는 독일어 가사를 한국어로 옮긴 자막이 투사됐다.

공연은 약 50분간 진행됐다. 관객들은 이 교회 교인들이 직접 만든 샌드위치를 먹으며 음악회를 관람했다. 가을날의 정취를 한껏 만끽할 수 있는 공연이었다.

정동제일교회가 이 같은 음악회를 선보인 건 2014년 봄부터다. 이때부터 교회는 매년 봄·가을 각각 8∼10주에 걸쳐 음악회를 연다. 행사 실무를 총괄하는 음악위원장 박은혜 권사는 행사를 여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문화선교의 중요성 때문”이라고 답했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을 돕고 해외 오지에 있는 아이들을 보살피는 것도 중요한 일일 겁니다. 하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주변 사람들을 문화행사를 통해 보듬는 것도 필요합니다. 음악회를 통해 시민들에게 휴식을 선물하고, 하나님과 만나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습니다.”

도심 속 대표적 문화공연으로 자리매김

음악회를 처음 열 때만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성과를 기대하진 않았다. 처음에는 교회 앞마당에서 공연을 열었는데 “시끄럽다”는 ‘민원’이 들어오기도 했다. 관객은 50명 안팎이었다.

음악회는 서서히 알려졌다. 교회에서 개최하는 공연이지만 찬양만 고집하진 않았다. 대중에게 잘 알려진 클래식 음악을 적극 수용했다. 요즘도 가끔 교회 앞마당에서 음악회를 열 때가 있는데 야외 공연이 열릴 때면 700명 넘는 시민이 발걸음을 멈추고 공연을 관람한다. ‘단골 관객’도 적지 않다.

음악회를 열면서 이 교회가 매주 수요일 정오에 드리는 ‘정동수요직장인예배’ 참석자도 늘었다. 이 교회 직장인선교위원회 관계자는 “음악회를 계기로 정동제일교회를 알게 돼 직장인예배까지 참석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음악회 개최 이후 직장인예배 참석자가 20∼30명 늘었다”고 전했다.

음악회를 봄·가을에만 여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 권사는 “날씨가 너무 덥거나 추우면 사람들이 음악회를 찾지 않기 때문”이라며 “장마가 시작되는 6월에도 공연을 열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문화선교는 한국교회가 중요하게 생각해야할 분야”라며 “앞으로도 음악회를 통해 선교의 사명을 감당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글=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사진=김보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