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에르도안, 反서방 신밀월

입력 2016-10-12 04:22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세계에너지총회(WEC)에 참석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두 정상은 흑해를 가로질러 양국을 잇는 가스관 건설에 합의했다. 서방사회와 갈등을 벌이고 있는 두 나라는 최근 부쩍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AP뉴시스
서방과 갈등을 겪는 터키·러시아의 관계가 급속도로 가까워지면서 ‘터키 스트림 협정’이 체결됐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양국 정상이 러시아와 유럽을 잇는 가스관 건설 협정에 서명했다고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세계에너지총회(WEC) 참석차 터키 이스탄불을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이렇게 합의했다. 러시아는 터키가 수입하는 가스에 할인 혜택을 주고, 터키는 가스관 건설 사업을 빠르게 진행키로 했다.

2014년부터 논의된 터키 스트림은 지난해 11월 터키 전투기가 시리아 국경에서 러시아 전폭기를 격추하면서 답보상태였다. 살얼음판을 걷던 양국은 지난 6월 에르도안이 사과하면서 급속히 가까워졌고, 2개월 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정상회담으로 관계를 회복했다. 지난 3개월 동안 양국 정상은 무려 세 차례나 만났다.

협정에 따라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 가스프롬은 2019년까지 러시아 남부와 터키 서부 키이코이 지역을 잇는 1100㎞의 가스관을 흑해 해저에 건설한다. 터키·그리스 국경지역에 유럽용 가스 허브를 건설한 뒤 유럽연합(EU) 회원국이 직접 자국으로 가스관을 잇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해저에는 각각 157억5000만 큐빅미터(㎥) 용량의 파이프라인 2개가 건설된다. 하나는 터키 내수용, 다른 하나는 서유럽으로 가는 수출용이다.

러시아는 2007년 흑해를 통과해 불가리아로 연결되는 ‘사우스 스트림 계획’을 내놨지만 EU 회원국의 반대로 무산됐다. 유럽행 가스관 여럿이 최악의 갈등을 겪는 우크라이나를 경유해야 하는 러시아로선 터키 스트림에 박차를 가할 수밖에 없다.

이번 합의는 각자 서방을 압박하려는 정치적 목적도 담겼다. 러시아는 시리아 내전 개입과 크림반도 사태로 미국과 ‘제2의 냉전’을 겪고 있다. 터키도 지난 7월 군부 쿠데타 진압 후 주동자로 지목된 페튤라 귤렌 송환 문제를 놓고 미국과 신경전을 벌였다.

양국은 또 “시리아 유혈사태가 중단되길 원한다”며 알레포 철수안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군사·외교·정보기관 협력을 강화할 방침도 내비쳤다.

이날 푸틴이 WEC 연설에서 “생산량을 제한하자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조치에 동참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해 한때 국제유가가 들썩이기도 했지만 러시아 측은 감산 계획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타스 통신에 따르면 알렉산드르 노박 에너지부 장관은 “생산량 감축이 아니라 현재 상태로 동결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푸틴의 발언으로 뉴욕상품거래소에서 다음 달 인도되는 원유는 배럴당 3.1%(1.54달러) 상승한 51.35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이는 종가 기준으로 지난해 7월 이후 가장 높았다.

한편 푸틴은 오는 19일 파리에서 예정된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의 회담을 연기했다. 푸틴은 당일 새 동방정교 교회 개설식에 참석한 뒤 올랑드를 만날 예정이었다. 하지만 최근 프랑스가 마련한 시리아 내전 종식을 위한 유엔 결의안이 지난 8일 러시아의 반대로 무산되자 프랑스가 반발하면서 양측은 갈등을 빚어 왔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