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들이 ‘불통(不通)의 계절’을 건너고 있다. 이화여대 학생들은 두 달 넘게 대학 본관을 점거하고 농성 중이다. 서강대에선 총장이 이사회와 갈등을 빚다 사퇴까지 했다. 서울대에서도 학생들의 본관 점거가 시작됐다. 잇단 파열음의 이면에는 ‘소통 부재’가 자리 잡고 있다. ‘불신의 벽’이 높게 서면서 사태 해결은 꼬이고만 있다.
서울대 학생 1000여명은 10일 오후 9시30분쯤 대학본관을 기습적으로 점거했다. 학교 측이 추진하는 시흥캠퍼스에 반대한다는 명목이다. 본관을 점거한 학생들은 11일 기자회견을 열고 “대학본부는 (시흥캠퍼스) 실시협약 사전협의를 약속했지만 스스로 파기했다”며 “학교의 시흥캠퍼스 일방 추진에 학생들의 분노가 표출된 것”이라고 밝혔다. 본관 점거 직전에 열린 학생총회에서 1980명 중 1483명이 시흥캠퍼스 실시협약 철회 요구에 찬성했다. 1097명이 대학본부 점거를 지지했다.
시흥캠퍼스는 경기도 시흥에 글로벌복합연구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이다. 서울대는 지난 8월 경기도 시흥시와 시흥캠퍼스 실시협약을 맺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시흥캠퍼스가 생기면 학교생활이 관악과 시흥의 2개 캠퍼스로 분리되고, 기업의 자본투자가 늘면서 ‘대학의 기업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서울대 관계자는 “시흥캠퍼스 사업은 10년 전부터 시작된 사업으로 그동안 학생 간담회 등을 통해 대화를 계속해 왔다”며 “국정감사 이후 본격적으로 내부 논의를 거쳐 방안을 고민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시흥캠퍼스에는 자율주행자동차 관련 연구 시설 등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라며 “학부생들과는 큰 상관이 없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은 ‘소통이 없다’고 분노하고 있다. 대학본부의 잇따른 불통과 독단이 쌓이면서 점거사태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성낙인 총장이 지난달 6일 학생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소통 미진을 인정했지만, 불만을 무마하기엔 갈등의 폭이 너무 커졌다.
지난 7월 28일 불거진 이화여대 본관 점거농성 사태도 두 달이 넘도록 실마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학교 측이 평생교육단과대학 사업을 철회했지만 총장 사퇴를 놓고 평행선만 달리고 있다.
서강대는 남양주 제2캠퍼스 설립 문제로 갈등 중이다. 서강대 이사회는 재정 상황 등을 이유로 2013년부터 진행해 오던 제2캠퍼스 조성 사업을 보류시켰다. 총동문회는 졸업생들에게 이사회의 절반을 차지하는 예수회의 경영 퇴진 서명을 받았다. 재학생들은 단식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결국 유기풍 총장은 지난달 29일 예수회의 독선을 비난하며 물러났다.
모두 학교, 이사회, 교수, 학생 등 대학 구성원 간의 소통 부족에 ‘파행의 뿌리’를 두고 있다. 신뢰가 회복되지 않는 한 사태 해결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학이 행정적 결정을 내릴 때 학생과 학교 사이에 입장차가 있을 수 있다”며 “때문에 학교가 학생과 의견을 나누고 동의를 구하는 민주적인 절차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
‘지성 요람’이 ‘불통 요람’으로… 대학가 갈등 도미노
입력 2016-10-12 04:04 수정 2016-10-12 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