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잠룡들 권력구조 ‘동상多몽’… 개헌까지는 첩첩산중

입력 2016-10-11 18:00 수정 2016-10-11 21:07


청와대의 진화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서 개헌 논의가 가라앉지 않고 있다. 국민일보는 11일 여야 대권 후보 10명의 개헌에 대한 입장을 듣기 위해 면담과 전화인터뷰를 병행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와 박원순 서울시장은 측근을 통해 입장을 전해왔다.

여권 후보들이 개헌에 상대적으로 적극적인 반면 야권 잠룡들은 필요성엔 공감했으나 실현 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현 시점에서 문 전 대표나 국민의당 안철수 전 공동대표가 개헌에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는 이유는 이들의 지지율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제외한 여권 후보군들보다 높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개헌을 하지 않아도 대권을 잡을 수 있는데, 굳이 무리하게 개헌이라는 ‘블랙홀’에 빠져들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김무성·원희룡 의견 똑같아

여권 대권 후보들의 의견은 크게 셋으로 갈렸다.

김무성 전 대표와 원희룡 제주지사는 미리 입장을 조율한 것처럼 판박이 주장을 내놓았다. 이들은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뽑고, 총선의 다수당이 총리를 배출하는 ‘대통령 직선 내각제’를 선호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들은 권력분산을 위한 개헌이 중요하기 때문에 개헌 과정에서 권력구조를 놓고 대충돌이 발생할 경우 대승적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양보할 수도 있다고 입을 모았다. 개헌 시기 역시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답했다.

반면 유승민 의원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순수 내각제나 내각제 요소가 들어간 대통령 직선 내각제, 분권형 대통령제 같은 형태로 개헌이 이뤄진다면 한국 정치는 더욱 퇴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 의원은 “권력구조는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면서 “개헌을 한다면 4년 중임제로 가는 개헌만 찬성할 것”이라고 했다. 오 전 시장은 “내각제 요소가 가미된 개헌은 권력 나눠먹기에 불과하다”고 했다.

남경필 경기지사는 ‘협치형 대통령제’를 꺼내들었다. 그는 “대통령이 국회 의석수에 따라 장관을 임명하면 여야의 극한 대치는 줄어들고 협치가 자리 잡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 의원과 오 전 시장, 남 지사는 “현행 체제로 대선을 치른 뒤 다음 대통령 임기 초반에 개헌을 해야 한다”는 일치된 의견을 내놓았다.

문재인·안철수 ‘현실성 의문’

문 전 대표와 안 전 대표는 “필요성에 공감한다”면서도 즉각적 개헌 논의 개시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개헌에 대한 두 사람의 어정쩡한 스탠스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문 전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이 명시적으로 개헌 반대 입장을 고수하는 상황에서 개헌 논의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대신 개헌 방향은 4년 대통령 중임제와 지방분권형 개헌이 돼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문 전 대표의 대변인격인 더민주 김경수 의원은 “여야 대선 후보들이 모두 개헌을 공약하고, 대선 이후 차기 대통령 임기 초반에 신속하게 추진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안 전 대표도 개헌 논의 개시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그는 국민일보 기자와 만나 “지금은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을 논의할 때가 아니다. 이는 국민들과 동떨어진 오로지 정치권만의 관심사”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개헌의 초점을 ‘국민의 기본권 향상’에 맞추고 국민적 동의를 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박원순 서울시장과 안희정 충남지사가 개헌 논의에 적극적이었다. 특히 박 시장과 안 지사는 지방자치단체장 답게 지방분권형 개헌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다. 박 시장 측은 4년 대통령 중임제를 선호했고, 개헌 시기는 “빠를수록 좋다”고 답했다.

안 지사는 지방분권형 개헌만 가능한다면 권력구조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밝혔다. 그러나 안 지사는 개헌이 대선과 총선이 겹치는 2032년쯤에 이뤄져야 한다는 독특한 의견을 내놓았다.

더민주 김부겸 의원은 야권 후보 중에는 유일하게 ‘분권형 대통령제’를 개헌 방향으로 제시했다. 김 의원은 “국가원수인 대통령에게 ‘최종 위기관리자’의 역할을 부여하고 내각과 국회의 권한을 확대해 일상적인 경제·사회·정치 문제를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하윤해 최승욱 기자 justice@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