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강진, 하늘·바다·산·들, 내 안의 시심을 일깨운다

입력 2016-10-12 17:29
전남 강진군 주작산에서 내려다본 도암면의 가을 들판과 강진만. 누렇게 익어가는 볏논이 아침 해의 붉은 기운을 받아 한 폭의 수채화를 펼쳐놓고 있다.
강진만생태공원의 대규모 갈대숲이 햇살을 받아 황금빛을 토해내고 있다. 천연기념물 201호 큰고니를 비롯한 철새들이 집단으로 서식하고 있다.
석양에 물든 마량면 서중어촌체험마을 포구로 바다낚시를 나갔던 강태공들이 돌아오고 있다. 어촌의 소박한 풍경과 고금대교의 야경도 볼 만하다.
‘남도답사 1번지.’ 1993년 유홍준 교수의 역작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소개된 전남 강진(康津)이다. 그만큼 문화재와 볼거리가 많다. 이런 강진에 2017년은 더욱 뜻깊은 해다. 강진군이 선포한 ‘강진 방문의 해’에다 강진이란지명이 탄생한 지 600주년, 전라병영성이 축성된 지 600주년,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진 유배시절 3대 저서로 꼽는 ‘경세유표’를 저술한 지 200주년이 된다. 이제 강진은 ‘남도답사 1번지’를 넘어 ‘한국답사 1번지’ ‘감성여행 1번지’ ‘힐링여행 1번지’로 도약하고 있다.

‘강진 문화의 뿌리’ 다산과 영랑

강진엔 다산 정약용의 자취가 진하다. 명소 다산초당(茶山草堂)은 물론, 그가 한동안 머물렀던 주막집 사의재(四宜齊)에도 여행객들의 발걸음이 잦다. 사의재는 다산이 1801년 11월 23일 낯선 땅 강진에 처음 유배돼 만 4년을 묵은 집이다. 그는 이곳 주막집 주인 할머니의 배려로 골방 하나를 거처로 삼아 몸과 마음을 새롭게 다잡았다. 사의재는 다산이 교육과 학문 연구에 헌신하기로 다짐하면서 붙인 ‘네 가지를 올바로 하는 이가 거처하는 집’이란 뜻의 당호다. 그가 유배생활에서 꼽은 ‘네 가지 마땅한 일’은 담대한 생각, 장중한 외모, 과묵한 말, 무거운 몸가짐이었다. 이후 1818년 유배가 풀릴 때까지 도암면 귤동마을 다산초당에서 거처했다.

다산초당으로 가는 길은 무성한 대나무숲을 지난다. 이어 울퉁불퉁한 소나무 뿌리가 팔뚝의 거친 힘줄처럼 고스란히 드러나 꿈틀꿈틀 살아 움직일 것 같은 야성미 넘치는 길을 만난다. ‘뿌리의 길’이다. 길을 따라 오르면 강진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만덕산 기슭에 자리한 다산초당이 모습을 드러낸다. 다산은 이곳에서 10년간 머무르며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를 비롯한 500여 권의 저서와 250여 수의 한시를 남겼다. 다산초당에서 샛길로 빠지면 동암과 천일각이 나온다. 동암은 다산이 손님을 맞거나 저술 작업을 하던 곳이다. 천일각에 오르면 강진만과 장흥 천관산이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전망이 좋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등 국내 대표 서정시를 노래한 영랑 김윤식 시인은 1903년 1월 16일 강진읍에서 태어났다. 영랑은 1950년 9월 29일 47세로 숨을 거두기까지 발표한 시 80여편 가운데 60여편을 이곳에서 지었다.

영랑생가는 1948년 영랑이 서울로 옮긴 뒤 몇 차례 전매됐다. 1985년 강진군이 매입해 관리해 오고 있다. 안채는 일부 변형됐던 것을 1992년에 원형으로 보수했다. 철거됐던 문간채는 영랑 가족들의 고증을 얻어 1993년 복원됐다. 생가에는 시의 소재가 됐던 샘, 동백나무, 장독대, 감나무 등이 남아 있으며 모란이 심어졌다. 정겨운 토담, 초가와 수십 년 된 은행나무, 대나무숲, 동백꽃과 목련이 어우러진 생가는 포근함을 준다. 입구에 들어서면 예쁜 바위에 새겨진 영랑의 대표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이 새겨져 있다. 영랑 생가 뒤편엔 세계모란공원이 들어선다. 유리온실에서 국내 유일하게 사계절 내내 모란을 볼 수 있다.

다산도 반한 백운동 별서정원

강진에 유서 깊은 ‘비밀 정원’이 있다. 월출산 아래 드넓은 차밭을 곁에 두고 짙은 숲그늘 속에 숨어 있는 백운동 별서정원이다. 17세기 강진의 처사였던 이담로에 의해 조성됐다.

다산은 1812년 제자들과 월출산 산행을 한 뒤 백운동 계곡을 지나게 된다. 100그루가 넘었다는 매화나무와 동백숲 등에 눈길을 뺏긴 다산은 숲 한가운데 터를 잡은 별서(別墅·별장)에 반해 하룻밤 잠을 청한다. 다산은 백운동 풍경을 안팎으로 나눠 ‘백운동 12경’이라 이름 짓고 1경 옥판상기(월출산 옥판봉의 상쾌한 기운)부터 12경 운당천운(운당원에 우뚝 솟은 왕대나무)까지 시로 읊었다. 이어 자신을 스승처럼 섬긴 초의선사에게 백운동과 다산초당을 그리게 한 뒤 이를 합쳐 ‘백운첩’(白雲帖)으로 남겼다. 백운동 별서정원은 이 백운첩을 바탕으로 복원된 것이다.

울창한 동백숲을 지나 백운동으로 들어서면 물소리가 먼저 반긴다. 옛 선비들이 즐겨 찾아 더위를 식혔던 곳. 간소한 건물을 둘러싼 돌담과 사방을 둘러친 숲이 아늑하다. 마당에는 월출산에서 흘러내린 물을 정원으로 끌어온 유상곡수(流觴曲水·술잔을 띄울 수 있도록 만든 구부러진 물길)가 굽이친다.

바다를 느낀다… 가우도 출렁다리와 마량항

가우도(駕牛島)는 강진군의 6개 섬 가운데 유일한 유인도이다. 섬의 형태가 소의 멍에처럼 생겨 가우도라 한다. 전남도가 ‘가고 싶은 섬’으로 선정한 가우도에는 14가구 80여 명이 살고 있다. 가우도를 한 바퀴 도는 약 2㎞의 트레킹 길이 조성돼 있어 바다를 보면서 간단한 가족 트레킹을 하기에 제격이다.

가우도 출렁다리는 두 개로 사람만 걸어서 갈 수 있다. 다리 중간에 설치된 유리데크는 강진만의 푸른 바다 위를 걷는 듯한 기분과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느끼도록 해준다.

이달 말 가우도 내 산정상에 청자 모양의 전망탑과 가우도와 대구면 저두쪽 바다 위를 횡단하는 짚 와이어가 설치되면 훨씬 많은 관광객이 몰려올 것으로 기대된다.

‘마량(馬養)’은 한양으로 바쳐지던 제주도 말이 잠시 머물렀다가 가는 곳이라는 데서 비롯됐다. 지금은 제주도로 가는 뱃길이 부산·목포·여수 등 여러 곳에 있지만 조선말까지만 해도 유일하게 제주로 갈 수 있는 항구였다.

마량면 서중어촌체험마을은 남도의 새로운 일출·일몰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어촌을 배경으로 하는 소박한 풍경과 어항의 시원한 정경이 어우러져 황홀한 풍경을 자아낸다. 고금대교와 방파제 불빛이 어우러진 야경도 일품이다.

감성을 불어넣는 갈대축제

국립환경과학원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강진만에는 남해안 11개 하구 평균보다 두 배나 많은 1131종의 다양한 생물이 살고 있다. 수달을 포함해 알락꼬리마도요, 큰기러기, 노랑부리저어새, 삵, 꺽저기, 기수갈고둥, 붉은발말똥게, 대추귀고둥 등이다.

강진만생태공원은 약 66만㎡(20만평)의 갈대 군락지를 포함하고 있다. 이곳에는 천연기념물 201호인 큰고니를 비롯한 철새들이 집단으로 서식하고 있다. 2.8㎞에 이르는 생태탐방로와 쉼터, 탐조대 등이 들어섰다.

이곳에서 오는 27일부터 30일까지 나흘간 ‘제1회 강진만 춤추는 갈대축제’가 열린다. 삶에 지친 도시민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물결 사이를 거닐며 촉촉한 감성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자연친화형 축제다. 27일 오후 갈대숲을 걷는 개막식을 시작으로 강진만 선셋 사랑 소원의 길 걷기, 강진만 갈대 야간경관 체험, 강진만 별빛사이 가을데이트, ‘강진만갈대’ 오행시 짓기, 강진만 갈대숲 전국촬영대회 등이 펼쳐진다.

여행메모

가우도·석문공원 ‘핫 플레이스’… 한정식·회춘탕·토하비빔밥 별미

수도권에서 승용차를 이용하면 서해안고속도로 목포요금소를 거쳐 죽림나들목으로 빠져 2번 국도로 갈아탄다. 이어 서영암나들목에서 목포광양고속도로로 옮겨탄 뒤 강진나들목으로 나오면 된다. 서천공주고속도로 동서천 분기점에서 서해안고속도로로 연결하는 방법도 있다.

강진의 ‘핫 플레이스’로 떠오른 곳은 가우도와 석문공원이다. 산세가 빼어나 금강산을 축소해 놓은 것 같다고 해서 ‘남도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도암면 석문산(해발 272m)에 ‘석문공원 사랑+구름다리’가 지난 7월 개장했다. 길이 111m, 폭 1.5m의 산악 현수형 출렁다리다. 병영면의 전라병영성 유적(하멜 체류지), 고려시대 청자를 생산해냈던 대구면 고려청자 도요지 등도 둘러볼 만하다.

강진의 먹거리로는 한정식, 문어와 전복 등을 주재료로 만든 회춘탕, 토하젓으로 비빈 토하비빔밥 등이 있다. 특히 한정식은 유배를 따라온 수라간 궁녀가 궁중음식의 비법을 전하면서 탄생했다고 전해진다. 병영면에서 파는 병영 돼지불고기는 한 번 맛보면 잊을 수 없는 그 맛에 관광객들이 또 찾는 1위 메뉴다.



강진=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